구미시 문화와 산행.

백봉회 4월 산행은 구미 동문과 합동으로 천년의 고찰 도리사를 품고 있는 "냉산" 의 등정.

용암2000 2015. 4. 19. 18:32

2015년 4월 12일.(일요일)

 

금월(4월) 백봉회 제276봉 산행은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거주하는 동문과 합동으로 구미시 인접지역에 있는 해평 "냉산(冷山)" 을 종주하겠다는 회장단의 결정으로 마이크로 버스는 9시 10분 서부주차장에서 출발하고, 대구시가지를 관통하여 최종 출발지가 되는 법원 앞에 도착하니 다수의 동문들이 기다리고 있다.

최종적으로 구미 동문 1명을 포함한 총 16명이 동승한 마이크로 버스는 출발시간 9시 40분 정각 구미에 거주하는 1명의 동문을 동승시키기 위하여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구미로 달려간다.

버스 속에서 회장 인사와 더불어 총무의 금일 참석 인원과 더불어 회원의 변동사항을 이야기 하는데, 현재 구미에서는 총 4명의 동문들이 거주하고 있다.

금일 구미에서 거주하는 동문 중 한명은 대구에서 함께 출발하고 1명은 구미에서 탑승하여 산행에 동행하고, 나머지 2명은 다소 몸이 불편하여 산행에는 불참하고 하산주를 겸하는 뒤풀이 행사에서 바로 참석하겠다는 제의가 있다고 한다.

아울러 경주와 영천에서 거주하는 3명의 동문이 산행의 들머리가 되는 도리사 주차장에서 만나기를 약속하는데, 금일 산행에 임하는 인원은 총 20명이고 뒤풀이 행사에 동참하는 2명의 구미 동문을 포함하면 총 22명이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그러고 오늘 특별하게 새로운 동문 한명이 산행에 동행하는데, 이 동문은 초기 백봉회를 설립하는데 크게 기여 함과 동시에 산대장을 역임하면서 백봉회 산행 기반을 조성한 동문으로 3년 전 학교 교편에서 정년 퇴임을 하였다.

현재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하는 네팔로 거주지를 이전하면서 그곳에서 사회봉사 활동과 더불어 산악 Guide를 겸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동문이 잠시 귀국하였는데, 오늘 백봉회 산행에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금일 산행을 추진하고자 하는 냉산은 구미시에서 해발 977m 금오산(金烏山) 다음으로 높은 산이면서 일명 "태조산(太組山)" 이라고도 불려진다.

냉산을 태조산이라고 불려지는 이유는 고려를 개국한 태조 왕건이 신라를 돕기 위하여 개성(開城)에서 경주(慶州)로 내려가는 길에 잠시 머문 산이면서도 천년의 고찰이 되는 "도리사(桃李寺)" 를 품고 있는 산이라 하겠다.

구미시는 경북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가장 우수한 재정자립도(財政自立度)를 유지하는 기관이다 보니, 타 지방 보다 많은 투자를 통하여 새로운 건물과 위락 시설을 조성하므로 다수의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는 산이라 하겠다.

이렇게 간단한 인사와 더불어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 구미역 앞에 있는 동문 골프 Shop으로 들어가 동문을 동승시키고 나서,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냉산의 산행 들머리가 되는 도리사 주차장으로 달려간다.

 

< 구미 동문이 운영하고 있는 "골프 Shop" >

 

경주에서 출발하는 동문의 도착 시간이 다소 지연되겠다는 전화 연락으로 먼저 도착한 동문은 도리사 경내를 관람하여 보는데, 경내 입구에 있는 설명문을 읽어 보면서 도리사 역사를 조명하여 본다.

 

< "도리사" 경내에 있는 설명문 >

 

도리사는 한국불교의 한민족 역사와 함께 흥망성쇄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사찰인데, 한국불교의 기틀을 마련하는 해동불교(海東佛敎)의 초전지 이면서 이곳 구미 해평(海平)에 있는 도리사에서 부터 비록한다고 한다.

묵호자로도 알려진 "아도화상(阿度和尙)" 은 신라불교의 공인(법흥왕 15년 : 528년)에 앞서 눌지왕(417-458년) 때 불교의 포교를 위하여 일성군(현재 : 선산)에 살고 있는 "모례장자(毛禮長者)" 의 집에 머문 바 있다.

신라불교는 아도화상의 전교(傳敎)로 부터 시작하며 그는 선산의 도개(桃開)에서 오색의 복사꽃이 눈 속에 피어나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절을 창건하는데, 이 사찰이 곧 해동 최초의 가람 "도리사(桃李寺)" 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도리사와 이웃한 도개에는 아도화상의 포교 전진기지로 삼았던 모례장자의 유적지가 있고, 집 터에는 모례정(毛禮井)이라는 우물이 있어 당시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신라불교의 새벽을 연 도리사는 임진왜란 이후 사운(寺運)이 점차 기울다가 큰 화재를 당하면서 사찰이 폐허가 되었지만, 산내 암자였던 "금당(金堂)" 이 화재를 면하므로 이로 부터 조금씩 사세(寺勢)를 회복하여 그 역사가 오늘의 도리사로 이어진다고 한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김천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써, 사찰 내에는 극락전(極樂殿)을 포함하여 적멸보궁, 조사전, 삼성각 등 전각을 비롯하여 태조선원과 설선당, 수선료 등 요사채가 있으며 아도화상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문을 읽어보고 경내로 들어가면 먼저 넓은 마당의 뒤편 2층 "설선당(說禪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 오른편으로 2층 "수선료(修善寮)" 건물이 함께 자리하므로 다소 큰 사찰임을 느끼게 한다.

 

< 도리사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설선당" >

 

< 마당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수선료" >

 

설선당은 정면 7칸에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2층 건물로써 1층은 보은전(報恩殿)이고, 2층이 설선당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보은전은 평생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이곳에 봉안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명절이나 기일마다 재(齋)를 지내고 있고, 2층의 설선당은 강당으로 사용하며 각종 법회와 선교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마당을 가로 질려 설선당과 수선료 사이에 있는 사잇길로 들어가면, 수선료의 왼편 끝지점에 감로수가 흘려내리는 우물이 자리하고 있다.

사찰에서 마련하고 있는 쪼롱 바가지로 물을 떠 단숨에 마시면서 갈증을 해소시키고, 우물 주변에 전시하고 있는 많은 한시(漢詩)와 더불어 조각품을 감상하여 본다.

 

< 설선당과 수선료 사이에 있는 "우물" >

 

< 우물 주변에 붙어있는 "한시" >

 

그러고 나서 수선료 건물 뒤편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또 다시 아담한 마당을 만나면서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일단의 축대 위에 도리사 중심이 되며 스님의 수행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면 7칸에 측면 8칸 규모의 ㄷ자 형태 "도리사(桃李寺)" 라는 옛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 건물의 오른편 처마 밑에 "태조선원(太組禪院)" 이라는 현판이 나란하게 붙어있다.

 

< "도리사와 태조선원" 의 현판이 나란하게 붙어있는 중심 옛 건물 >

 

이 태조선원을 지나면 마당의 오른편 구석에 도리사의 주불을 모시고 있는 "극락전(極樂殿)" 이 자리하고 있는데, 극락전은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의 주재자가 되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 주불을 모시고 있는 "극락전" >

 

극락전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인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종 12년(1875년) "용해(龍海)스님" 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외부 앙서와 상부 익공 및 내부 운궁의 형상이 1870년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의 공포 양식과 유사하므로 조선 말기의 건축이라 하겠다.

내부에는 인조 23년(1645년)에 조성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고종 13년(1876년)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화를 봉안하고 있는데, 근래에 지장탱화와 신중탱화를 조성하여 함께 봉안한다고 한다.   

극락전 앞 마당에는 보물 제470호로 지정되어진 도리사 화엄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석탑은 일반석탑과 전혀 그 형태를 달리하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높이 3.3m의 탑이다.

 

< 보물 제470호로 지정되어진 "화엄석탑" >

 

지면(地面) 위에 10매의 길게 다듬은 돌을 놓고 그 위에 탑의 기단 부분을 세웠는데, 또한 기단은 사면에 네모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의 각면에 직사각형 판석 6-7매로 병풍 처럼 둘러 세었고 남면 중앙부에는 문짝이 새겨져 있다.

탑신부분은 3중으로 각층마다 작은 석재를 종합하여 얽거나 짜서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벽돌탑을 모방한 모전석탑(模塼石塔) 계열에 가깝고, 조각 양식과 돌의 다듬은 수법 등으로 보아 건립 연대는 고려시대 중엽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화엄석탑의 왼편 사잇문으로 내려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2기의 비석이 서 있는데, 오른편에 있는 큰 비석은 아도화상의 사적비가 되고 왼편에 있는 작은 비석은 도리사를 창건하는데 시주한 내역을 기록한 불량답(佛糧畓) 시주질비(施主秩碑)이라고 한다. 

 

< 화엄석탑 왼편 사잇문 아래에 있는 "비석과 좌선대" >

 

< 오른편 "사적비" 와 왼편 "시주질비" > 

 

이 사적비와 시주질비 앞에 몇 개의 돌을 쌓아 만든 좌선대(坐禪臺)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좌선대에는 아도화상이 바위에 앉아 수행하면서 불교에 정진하므로 한 겨울에도 북숭아 꽃과 오얏꽃을 피웠다고 한다.

 

< 아도화상이 좌선을 행한 "좌선대" >

 

< 동문 한명이 "좌선 체험" 을 하면서 >

 

다시 경내로 들어와 극락전과 태조선원을 지나면 이내 야산으로 올라가는 높은 돌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가면 야산 언지리에 아도화상 동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동상 앞에는 지속적으로 향불을 피우고 있다.

 

< 아도화상 동상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나옹스님" 의 시비 >

 

< 야산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아도화상 동상" >

 

양나라의 사신이 신라에 향(香)을 예물로 보내왔으나 그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없어 걱정 해오던 중 아도화상은 모례장자의 추천으로 궁(宮)으로 들어가 향의 사용법을 알려주는데, "향을 불에 태우면 향기가 그윽하여 신성하기가 이를데 없고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다" 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왕의 공주인 성국공주가 큰 병이 들어 있었는데, 왕이 아도화상에게 치료를 청하니 아도화상이 칠일간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니 신통하게도 공주의 병이 씻은 듯 나았다고 한다.

아도화상의 동상에서 더 왼편으로 들어가면 높은 돌계단 위에 정면 3칸에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 "적멸보궁(寂滅寶宮)" 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적멸보궁은 한국의 8대 적멸보궁 중 하나이라고 한다.

 

< "적멸보궁" 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

 

< 우리나라 "8대 적멸보궁" 을 나타내는 설명문 >

 

< 돌계단의 끝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적멸보궁" 현판 >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하므로 법당 내에는 별도의 불상을 모시지 않고, 법당 뒤쪽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조성하여 법당 안에서 사리탑을 향해 예배를 올리게 된다.

 

< 적멸보궁 건물 뒷면에 있는 "통 유리" > 

 

< 부처님의 "진신사리" 를 모시고 있는 사리탑 >

 

도리사 적멸보궁은 1982년 주지 법등(法燈) 스님이 사리 예배와 기도를 위하여 건립하였는데, 법당 안에서 보이는 석가여래사리탑은 1977년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 한과를 봉안하기 위해 1987년에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이 밖에 도리사에는 삼성각(三聖閣)을 비롯하여 세존사리탑, 법종각, 염화실, 휴휴정, 반야쉼터, 정자, 포대화상 동상, 변소, 서대, 일주문, 야외무대 등의 건물과 휴식공간이 자리하고 있는데,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면서 선교와 더불어 불교 중흥에 매진하고 있는 사찰이라 하겠다.

 

< 적멸보궁 앞에 있는 "범종각" 건물 >

 

< 극락전 앞에 있는 "포대화상" >

 

<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 "야외무대" >

 

경내를 돌아보면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경주에서 출발한 동문과의 만남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산행길로 들어가는데, 사찰 왼편에 있는 산행 들머리 길로 들어서자 마자 이내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서 걸으니 소나무에서 많은 피톤치드가 발산하고 있어 매우 상쾌한 기분을 일어나게 한다.

 

< "진달래 꽃" 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산행 들머리 >

 

급경사의 오르막길 따라 고도를 상승하면서 올라가면 오솔길 주변으로 진달래 꽃들이 흐들어지게 피어 있어 매우 애착이 가는 길이 되지만, 점점 호흡 곤란으로 후미에서 최후의 발악하는 모습으로 산행을 임하지만 선두와의 거리는 더욱더 벌어진다.

 

< 후미에서 걷고 있는 나와 동문을 기다리고 있는 "네팔" 에서 온 동문 >

 

벌써 정상을 갔다가 내려오는 몇 명의 아주머니에게 정상의 길을 물어보니 조금 만 더 올라가면 능선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부터 매우 완만한 길이 되므로 조금 고생하면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여 준다.

한 30분 정도 죽을 힘으로 고도를 상승하니 능선에 올라서면서 선행하여 가는 동문들이 휴식을 가지면서 수고의 격려와 함께 오이 한조각을 나누어 주는데, 죽어가는 나무에 단비와 같은 심정으로 갈증을 해소시켜 본다.

약간의 휴식을 가지고 오른편 방향으로 능선 따라 천천히 고도를 상승하는데, 이제 부터 그렇게 난이한 코스가 지나가므로 가벼운 발 걸음으로 낮은 오르막 길로 한참을 걸어가면 돌탑이 쌓여 있는 무명의 한 봉우리에 도착한다.

 

< 냉산의 정점 앞 돌탑이 쌓여 있는 무명의 "봉우리" >

 

이 무명의 봉우리에서 약간의 내리막 길로 내려가다가 다시 한번 더 고도를 상승하면, 오늘 산행의 최고 지점이 되는 해발 692m "냉산(冷山)"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어느 산에서 볼 수 있는 정상석은 없고, 나무 가지에 묶어두고 있는 정상 표시판과 더불어 많은 리본들이 정상을 가르키고 있다.

 

< 냉산의 정상을 알리고 있는 "표시판과 리본" > 

 

선행하여 걸어간 모든 동문들이 기다림을 가지다가 후미와의 만남을 이루면서 약간의 휴식을 가지고 정상 표시판 앞에 서서 제276봉 등정식을 가지는데, 금일 276봉 산행은 백봉회를 결성한 후 23년이 되는 특별한 날이라고 회장이 부언하여 이야기하여 준다.

언제나 동일하게 먼저 타계한 동문의 묵념과 더불어 교가를 불려보는 것으로 등정식을 진행하는데, 금일은 다소 많은 동문들로 교가의 소리가 우렁차므로 주변에 있는 등산객들에게 아름다운 시선이 날아온다.

 

< 냉산의 정상에서 "등정식" 을 가지고 있는 동문 >

 

비록 교가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소음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머리가 햐얀 사람들이 산의 정점(頂点)에서 교가를 불려 본다는 자부심으로 주변 등산객과 산새, 진달래 꽃, 소나무들이 이해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동문들의 교가 소리를 듣고 있는 "진달래 꽃" >

 

그러고 나서 정상 인접지역에 있는 한 평지를 선택하여 점심식사 시간을 가지는데, 경주에서 살고 동문의 경주 막걸리 찬조와 더불어 유기농으로 재배한 채소를 반찬으로 만들어 온 덕분으로 금일도 푸짐한 Well-being 식사가 된다.

 

< 냉산의 정상 인접지역에서 "점심식사" 를 즐기는 동문 >

 

아울러 특별하게 네팔에서 참석한 동문의 현지 이야기와 더불어 금년 겨울(네팔에서는 최상의 계절이 되는 가을)에 한번 단체로 방문하여 희말리아 산 끝자락이라도 구경하자는 이야기로 최상의 흥미를 유발시키게 한다.

풍족한 만찬으로 배를 충만시키고 자리를 정리 함과 동시에 하산길로 들어서는데, 하산길은 조금 전에 올라왔던 능선길로 되돌아서 내려 가다가 3거리 지점에서 경주팀은 승용차를 가져가기 위하여 올라왔던 도리사 방향으로 하산하고 나머지 동문들은 더욱더 긴 산행을 하기 위하여 계속하여 앞으로 전진하기로 한다.

아름답게 피어 있는 진달래 꽃에 도취하면서 무아지경으로 능선의 오르내림을 반복하여 한 시간 정도 앞으로 전전하다가 왼편 90도를 꺽어 활공장 방향으로 내려간다는 이정표를 보고, 더 이상의 전진을 멈추고 산악 레포츠 공원(활공장)과 태조산정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 "냉산" 의 산행 지도 >

 

< 활공장 방향과 "산악 레포츠 공원" 을 가르키는 이정표 >

 

한 50m 정도 내려가면 넓은 잔디로 만들어져 있는 비탈면 공터와 함께 활공장에 도착하는데, 이곳 활공장 앞에 넓은 해평 평야와 더불어 낙동강이 뱀과 같이 구비쳐 흘려 내려가는 풍경과 더불어 구미보가 발 아래 머물고 있다.

 

< 매우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활공장" >

 

< "활공장" 의 안전수칙 >

 

< 활공장 앞으로 펼쳐지고 있는 "낙동강" >

 

< 낙동강 수운을 조절하고 있는 "구미보" 전경 >

 

고개를 약간 높게 들어보면 구미를 감쌓고 있는 금오산의 높은 산맥이 하나의 능선을 이루면서 펼쳐지는 풍경이 아련하게 보이고 있는데, 이곳 활공장에서 행글라이드 동호인들이 바로 아래에 있는 임도에서 부터 무겁게 지고 온 행글라이드를 타고 금오산 방향의 하늘을 의존하면서 날아오르는 장소가 된다.

 

< 멀리 보이고 있는 "금오산" 능선 >

 

그런데 우리 일행이 너무 늦어서 그런지 아니면 금일 행글라이드가 이륙하는데 필요한 바람이 불지 않고 있는데, 행글라이드가 한마리의 새 처럼 솟아 오르고 있는 환상적인 풍경을 구경하지 못하여 다소 애석함이 묻어난다.

 

< 활공장 잔디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문" >

 

또 다시 활공장 잔디에 앉아 다양한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하산길로 내려가는데, 급경사의 하산길로 조금 내려서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 우측편 200m 아래에 아도화상이 입적(入寂)하신 금수굴이 있고, 직진하여 300m 정도 가면 냉산에서 최고의 풍경을 구경 할 수 있는 태조산정(太朝山亭)이 있다는 이정표가 있다.

 

< 임도변에 활공장을 가르키고 있는 "안내판" >

 

< 임도변에서 "금수굴과 태조산정" 을 가르키는 이정표 >

 

양쪽 다 왕복하여 갔다가 돌아서 오면 시간적으로 너무나 늦어지면서 피곤으로 인하여 관람을 포기하고, 왼편으로 이어지는 임도길 따라 산악 레포츠 공원 방향으로 바로 하산하기로 한다.  

임도 따라 한 20분 정도 하산하여 가면 임도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 되는 사잇길을 만나는데, 사잇길로 들어가 개울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마이크로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산악 레포츠 공원에 도착한다.

 

< 임도 따라 하산하고 있는 "동문" >

 

< 임도에서 "산악 레포츠 공원" 의 지름길을 가르키고 있는 이정표 > 

 

이곳 산악 레포츠 공원은 냉산을 가로 질려서 MTB 자전거 동호인들이 운동을 즐기도록 만들어진 코스가 너무나 잘 개발 함으로 매년 산악 자전거 대회가 개최한다는 공원이라고 한다.

 

< 낙동강과 냉산 주변으로 조성하고 있는 "MTB 코스" 지도 >

 

공원 주변에 정자를 비롯하여 야영장, 체육시설, 조각공원, 야생화 단지, 위락시설, 주차장 등이 너무나 잘 조성되어 있는데,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의 야유회를 즐기는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여가를 즐기기에 최상의 장소가 되는 공원이라 하겠다. 

 

< 산악 레포츠 공원 내에 있는 "정자" >

 

< "산악 레포츠 공원" 전경 >

 

먼저 도리사 방향의 지름길로 하산한 경주에 사는 동문과 또 다시 접선이 이루어지는데, 마이크로 버스에 승차한 동문은 구미 동문들이 기다리도 있는 골프 Shop으로 다시 들어가 골프 Shop 옆에 있는 동일 건물 "초원식당" 으로 안내가 된다.

 

< 구미 동문들이 초대한 "식당" >

 

식당으로 들어가 2명의 구미 동문과 조우를 이루고 나서 구미 동문들이 접대하는 만찬을 즐겨보는데, 금일 백봉회 총무는 우리 대구 동문들이 평소에 구미 동문에게 너무나 많은 신세를 지므로 미안 함이 하늘을 찌른다고 한다.

 

< 백봉회 "총무" 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

 

그의 답사로 구미 동문들은 이제 우리가 몇 번을 더 만나겠는가 하면서 집과 장기를 팔아서라도 대접 할 것이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자주 대면하여 오늘과 같이 우정의 시간을 갖자는 인사에 코 끝을 시큰하게 만든다. 

어찌하던 오늘 좋은 날씨에 무탈하게 산행을 끝내게 하여 주고 이렇게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건강을 허락하는 동문들에게 상호 박수를 보내고, 기나긴 이야기로 만찬의 밤은 깊어가도록 발목을 잡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