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일대기.

부산에 살고 있는 큰아들 생일 잔치의 참석과 더불어 손녀와 데이트 장소 "해동용궁사" 를 찾아서.

용암2000 2015. 6. 3. 08:55

2015년 5월 24일.(일요일)

 

오늘은 나의 큰아들 탄생일(誕生日)이 되는 날이라 모처럼 손녀와의 데이트(Date)도 즐기기 위하여, 아내(Wife)와 나는 작은아들이 운전하는 모닝에 의존하면서 부산광역시로 내려가기로 한다.

하단에 있는 집에 도착하니 큰아들과 며느리가 집에서 기다리지만, 손녀는 외할머니와 함께 교회(敎會)에 있는 친구들도 만나면서 예배를 보기 위하여 출타 중이라 다소 허전함이 일어난다.

손녀가 돌아오기 까지 과일을 깍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12시 30분 경 외할머니 손을 잡고 들어오는 손녀를 다시 대면하는데, 어버이날 대구에서 만나 데이트를 한 경험이 있는 손녀가 그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 및 삼촌 얼굴을 까먹었는지 인사도 없이 엄마 쪽으로 숨어버린다.

괴씸이 하늘을 찌르지만 누구를 닮아서 그런지 처음 대면하는 사람에게 많은 부끄러움을 타는 것은 조상 때 부터 내려오는 우리집 전통이라 그러니 하는데, 며느리가 차려주는 간단한 생일잔치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다.

식사 때 부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아보는 손녀가 애교 작전을 돌입하면서 지금까지 배운 언어 실력을 발휘하는데, 몇 가지 단어는 잘 알아 듣겠으나 대부분 말은 손녀의 어머니가 통역하여야 이해가 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그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다가 부산의 명소가 되는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 나들이를 가기 위하여 길을 나서는데, 작은 모닝을 대신하여 큰아들이 몰고 다니는 쏘렌토 승합차를 이용하기로 한다.

언제나 사업장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큰아들은 일터로 들어가기로 하면서 손녀를 비롯하여 5명이 승합차에 몸을 싣고 부산시가지를 관통하여 해동용궁사가 있는 기장 방향으로 드라이브도 겸하면서 달려가는데, 가는 방향에 있는 해운대 해수욕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어 차량의 정체가 하늘을 찌른다. 

그럭저력 달맞이공원 및 송정해수욕장을 지나 해동용궁사 입구 삼거리에 도착하니 많은 버스와 승용차로 문전성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면서 내일이 사월초파일이라서 그런지 너무나 많은 불자(佛者)들이 움직이고 있다.

정체로 인하여 삼거리 입구에 있는 도로에서 부터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집 식구는 내리 쪼이는 햇살과 손녀의 안전을 위하여 다소 기다림을 가지면서 천천히 운전하여 이윽고 주차장에 도착한다.

2.000원의 주차료를 지불하고 해동용궁사 입구로 들어가는데, 좌우에 있는 상점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음식과 간식 및 볼거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경내로 이동한다.

 

< "해동용궁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의 거리 풍경 >

 

< 해동용궁사 입구에 있는 "시비" 읽어보면서 > 

 

손녀는 많은 사람들을 대면하므로 너무나 신명이 나서 비명을 지르면서 선두로 씩씩하게 달려가는데, 양쪽 할머니가 서로 보호하면서 경내 입구에 도착하니 긴줄을 형성하면서 차례차례로 입장이 가능하게 한다.  

 

<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12지상" >

 

< 조형물 사이로 거닐고 있는 "손녀" >

 

<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불탑" >

 

입구에 있는 해동용궁사 역사를 읽어보면, 옛부터 바다는 많은 신비와 변화를 간직하면서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하여온 곳으로 잔잔함과 더불어 평화로움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폭풍우가 동반하는 성냄도 있는 곳이다.

대개의 사찰은 산중(山中) 깊숙한 곳에 있는 것과는 달리 해동용궁사는 이름 그대로 검푸른 바닷물이 바로 발 아래에서 철석되는 "수상법당(水上法堂)" 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관음신앙은 해안이나 섬에서 형성되어 있는데, 양양의 낙산사와 남해의 보리암 및 이곳 해동용궁사는 한국 3대 관음성지의 한 곳으로 바다와 용 및 관음대불이 조화를 이루면서 그 어느 곳 보다도 신앙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동해 최남단에 있는 해동용궁사는 1376년 고려 공민왕의 왕사이었던 "나옹대사(懶翁大師)" 가 창건하였는데, 대사님이 경주 분황사에 주석하면서 수도하는 중 나라에서 큰 가뭄이 발생하여 들에는 곡식과 풀이 말라 죽고 인심이 흉흉하여 만백성이 비 오기만 기다리면서 하늘을 원망하였다고 한다.

이예 하루는 몽중(夢中)에 동해 용왕님이 큰스님에게 배읍하면서 말씀하시기를 봉래산 끝자락에 사찰을 건립하여 기도를 한다면, 비가 내리면서 국태민안(國泰民安) 할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그후 스님이 이곳으로 내려와서 지세를 살펴보니 뒤에는 산이요, 앞에는 푸른 바다로 아침 기도를 드리면 저녁에 복(福) 받을 곳이라고 하시면서 사찰을 건립하고 나서 산의 이름을 봉래산이라고 하였으며 사찰의 이름을 "보문사(普門寺)" 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의 전화(戰火)로 인하여 사찰 모두가 소실되어 약 300년 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그후 여러 고승들이 사찰을 복원하였으며 1974년 "정암스님" 이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므로 사명(寺名)을 "해동용궁사" 로 바꾸었다고 한다.

입구를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가면 내일 사월초파일로 인하여 곳곳에 연등을 장식하고 있으며, 아울러 인산인해로 발을 이동하기 어려운 상태의 불자와 관광객이 혼합하여 움직이고 있다.

 

< 할머니 손을 잡고 사찰로 들어가는 "손녀" >

 

< 많은 연등으로 장식하고 있는 "해동용궁사" > 

 

< 해수관음대불 앞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동용궁사" 전경 >

 

< 많은 "연등" 아래로 걷는 관광객 >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보전에서 "염불" 을 집도하는 스님 >

 

< "박근혜 대통령" 연등도 보이면서 >

 

< 간절하게 소원을 빌고 있는 "불자" >

 

나는 이곳 해동용궁사를 몇 번 방문한 경험이 있으므로 다소 익숙한 길로 안내하면서 경내를 한바퀴 돌아보고 있는데, 전체의 조망을 하기 위하여 바다가로 내려가니 이곳에도 많은 관광객과 불자들이 움직이고 있어 기다림의 연속이 되어진다.

 

< 바다가에 머물고 있는 "관광객" >

  

< 바다가에도 앉아 있는 "부처님" >

 

< 바다가에서 바라보는 "해동용궁사" 전경 >

 

<바다가에서 "방생" 하는 불자 >

 

바다가에서 한참 휴식을 가지면서 앉아 있으니 손녀가 이동하기를 원하므로 주차장으로 탈출하니 주차장 가장자리에 씨앗호떡을 판매하는 가게 앞에도 줄을 형성하고 있어 잠시 기다림 후 간식용 호떡을 구입하여 먹어보는데, 손녀도 단숨에 한개를 먹어 치우는 즐거움을 가진다.   

 

< "씨앗호떡" 을 판매하는 가게 앞에서 >

          

너무나 많은 관광객으로 다소 짜증나는 구경을 끝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부산의 교통지옥으로 다양한 곤욕을 치루고 나서 큰아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하여 사업장 인접지역에 있는 식당을 찾아가니 이곳도 많은 사람들이 번호표를 받으면서 기다리고 있다.

 

< 대표적 "교통지옥" 을 형성하고 있는 부산시가지 >

 

늦은 저녁식사 시간을 가지면서 큰아들 생일을 다시 한번 더 축하를 하면서 푸짐한 외식시간이 되어지는데, 손녀는 무엇이 그렇게도 좋은지 연신 노래하고 춤추면서 뛰어 노는 하루가 되어진다.

 

< 큰아들이 선정한 하단에 있는 "식당" >

 

< 큰아들과 함께 하는 "손녀" >

 

< 맛 있게 식사하는 "가족" >

 

< 야채를 가지고 요리하는 "손녀" >

 

< "손녀" 를 앉고 있는 삼촌 >

 

< "가족과 외할머니" 와 함께 하는 사진 >

 

다소 늦은 시간까지 식당에 앉아 만찬을 즐기다가 다시 집으로 이동하여 간단하게 음료수 한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차량의 움직임이 둔하여 지는 늦은 밤시간을 이용하여 대구로 출발하기로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