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회 합동산행.(서울 및 대구)

계성고등학교 제56회 대구 및 서울 동문 합동산행은 충청도 영동군에 있는 "월이산" 의 종주.

용암2000 2016. 6. 27. 23:18

2016년 6월 25일.(토요일)

 

대구와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 계성고등학교 제56회 동문은 매년 한차례 합동산행을 통하여 우정을 돈독하게 유지하고 있는데, 금년에는 대구에 거주하는 동문으로 구성하고 있는 "백봉회" 에서 주관하는 년도가 되어진다.

회장단의 상호 조율을 통하여, 금년에는 넷째 토요일이 되어지는 6월 25일 한반도의 거의 중앙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충청북도 영동군 "월이산(月伊山)" 에서 개최하겠다는 안내문이 발송하여 진다.

당일 아침 9시 대구 법원 앞으로 나아가니 일상적으로 참석하는 많은 동문들이 함께 하지 못하면서 최소의 인원이 되어지는 13명이 동행하고, 서울에서는 11명이 출발하여 진다는 상호 연락이 도착되어 진다.

양쪽에서 동시에 출발하는 마이크로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집결지가 되어지는 영동군으로 달려가는데, 대구팀은 추풍령 휴게소로 들어가 간단하게 불순물을 제거시킴과 동시에 북쪽으로 달려 황간 Toll gate를 벗어나자 마자 영동시가지를 통과하여, 월이산 산행 들머리가 되어지면서 계곡이 만들고 있는 옥계폭포 입구 주차장에 11시 30분 경 도착한다.

 

 

< "옥계폭포" 를 알리는 입석 >

 

 

< 옥계폭포 입구 주차장에 있는 난계 "박연" 선생님 동상 >

 

작은 주차장에는 거의 움직이는 차량이 없으므로 인하여 주차장 가장자리에서 하차하여 갈증을 해소 시키기 위하여 한잔의 막걸리로 반주를 마시고 있으니, 서울에서 출발한 동문들의 마이크로 버스가 도착하므로 긴 인사의 시간을 가지는데, 이렇게 긴 인사를 하는 이유는 일년이라는 시간이 흘려가므로 인하여 이제는 세월의 무상함으로 억울함이 묻어난다.

 

 

< 옥계폭포 입구에 있는 "영동군" 조감도 >

 

일행은 산행의 들머리가 되어지는 지점에 있는 옥계폭포를 구경하기 위하여 폭포 방향으로 이동하여 폭포를 감상하는데, 먼저 폭포 앞에 머물고 있는 해설사 아주머니로 부터 옥계폭포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기로 한다.

옥계폭포는 높이가 약 30m가 되어지는데, 이곳 옥계폭포를 형성하고 있는 바위 모양이 여자의 음부와 같이 오목하게 쌓여 있으면서 그 속으로 폭포수가 떨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어 음(陰)의 기운과 더불어 폭포 아래에 옛날 양(陽)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남자의 성기와 비슷한 바위가 폭포 속에 솟아 있었다고 한다.

 

 

< "옥계폭포" 를 관람하는 전망대 >

 

 

< 남근석과 함께 하는 "옥계폭포" 전경 >

 

그런데, 폭포 아래에 거주하는 마을 주민들이 폭포에 있는 남근석 바위가 주변 풍광을 흐리게 한다고 하면서 바위를 가장자리로 이동하므로 인하여 그때 부터 마을에서 변고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모든 변고가 남성들에게 일어나므로 인하여 주민들이 상호 토의한 결과, 바위 이동에 따라 변고가 발생하였다 것을 인지하고 나서 바위를 원상복귀 하므로써 그후 모든 변고가 살아지고 무탈한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 해설사 내용을 집약하고 있는 "설명문" >

 

특히 이 폭포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하여 조선의 3대 악성(樂聖)이 되는 난계 "박연(朴堧)" 선생님이 옥계폭포를 찾아와 폭포 언저리에서 수시로 피리를 불므로 주변 바위 틈에 피어난 난초가 매료 되었다고 하여 난초의 난(蘭)과 시내의 계(溪)를 써서 "난계(蘭溪)" 라는 호를 만들었다고 한다.

난계 박연은 이곳 영동군에서 탄생하여 어려서 고향의 향교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우문관 대제학(右文館 大提學)의 시용(時庸)이 되었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천석(天錫)이고, 어머니는 경주 김씨이라고 한다.

11세에 모친상을 당하자 1년의 상이 끝난 뒤에도 3년 동안 여막에 거처하면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상을 치렸으며, 예악(禮樂) 연구에 뜻을 두어 유적(遺籍)을 수집하여 그 의칙(儀則)을 연구하고, 음율(音率)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다.

태종 5년(1405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11년 문과에 급제하면서 집현전 교리,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을 거처 세자의 시강 원문학으로 있었는데, 당시 세자였던 세종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 세종 때 율관을 만들어 편경을 제작하는 등 조선초기 음악 완비에 공을 세웠는데, 우리나라에서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으로 불린다.

1456년 셋째 아들이 단종 복위에 연루되어 죽었는데, 이때 박연은 파직되어 고향이 되는 영동으로 내려와 이곳 옥계폭포를 많이 찾았으며 현재 그의 업적을 기록하고 있는 "난계국악박물관" 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입구 영동군 심천면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시간이 허락하면 귀가 길에 한번 방문하여 주기 바란다고 하면서 해설을 끝낸다.

지속적인 가뭄으로 인하여 다소 떨어지는 수량이 적은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을 찍고 나서 12시 10분 경 산행의 들머리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산행 들머리는 폭포의 왼편에 있는 아름다운 정자 옆으로 길이 만들어져 있다.

 

 

< "옥계폭포" 를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 한장 >

 

 

< 산행의 들머리 있는 "정자" >

 

산행길 들머리 입구에는 계곡의 상부 1.5Km 지점에 "일지명상센터와 천화원" 이 자리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는 지시표 따라 고도를 상승하면, 산행길은 이내 급경사의 오르막 길로 올라가서 옥계폭포 위편에 도착하면서 길의 가장자리에서 밑으로 바라보면 조금 전 서울 동문과 만남의 순간을 가진 주차장 계곡이 아련하게 자리하고 있다.

 

 

< 산행 들머리에 있는 "일지명상센터와 천화원" 거리 표시 >

 

 

< "월이산" 의 산행길 조감도 >

 

 

< 산행의 들머리로 올라가는 "동문" >

 

 

< 폭포 위에서 바라보는 "주차장" 계곡 전경 > 

 

산행길은 다시 조금 내려가면서 폭포로 물을 흘러내리게 하는 계곡에 도착하여 지고, 계곡을 가로 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면서 산행길은 숲속으로 이어지면서 한 모퉁이의 산길을 돌아서 올라가면 3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 옥계폭포 위쪽에 있는 "개울" >

 

왼편 계곡방향의 길은 월이산을 종주하고 나서 하산하는 길이 되어지면서도 또한 일지명상센터와 천화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되어지고, 오른편 오르막 길은 월이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이라고 이정표에서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 처음 만나는 "3거리" 이정표 >

 

오늘 산행을 주관하는 대구의 총무가 3거리 입구에 서서 일행을 오른편 오르막 길로 안내하면서 여기에서 한 30분 정도 급경사 길이 되어져 충분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능선에 올라서면서 부터 산행길이 완만하여 진다는 독려의 말로 산행을 안내하여 준다.

개인적인 산행 실력으로 인하여 앞에서 걷는 동문과의 거리를 가지면서 천천히 고도를 상승하지만 이내 땀으로 범벅이 되어지는 몸과 얼굴로 선두와의 많은 격차가 발생하면서 후미팀이 형성하여 지는데, 후미팀을 형성하는 대부분의 동문을 대구에서 거주하는 동문들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동문들은 많은 산행을 통하여 긴 훈련이 되었는지 아니면 미세 먼지를 많이 마시다가 이렇게 맑은 공기가 흐르고 있는 산으로 올라가므로 인하여, 에너지가 충만하여 후미팀과의 머나먼 거리를 형상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후미팀에서 악전 고투를 하면서 한 30분 정도 고생하면서 고도를 상승하니 이윽고 산행의 능선에 도착하는데, 능선에는 아룸다운 정자 한채가 자리하므로 인하여 휴식도 겸하면서 정자에 올라가 주변 풍광을 구경하여 보니 정자의 난간에서 내려보는 풍광은 멀리 금강이 굽이쳐 흘려가는 매우 아름다운 산천이 펼쳐진다.

 

 

< 월이산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 >

 

 

< 정자의 난간에서 바라보는 "금강" 산천 >

 

선행팀과의 거리가 너무나 많이 발생하므로 인하여 에둘러 길을 재촉하는데, 여기에서 좌측 계곡 방향으로 "서재마을" 을 두고 거의 원형과 같이 빙돌아서 능선길을 만들면서 월이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형상하는데, 걷는 길은 울창한 숲을 형성하므로 인하여 힐링(Healing) 하기에 최상의 길이 되어진다.

 

 

< "힐링" 길이 되는 소나무 숲 >

 

그렇지만 능선의 길이 너무나 길면서 오르내림이 많다 보니 다소 짜증의 시간이 되어지므로 인하여, 후미팀 중 일부 동문이 산행을 포기하고 돌아서 갈려고 하는 동문에게 다소의 거짖 말로 위로하면서 약 1시간 정도 고도를 상승하여 산행의 정점이 되어지는 해발 551m "월이산(月伊山)" 정상에 오후 2시경에 도착하여 진다. 

정상 언저리에는 한기의 무덤과 더불어 삼각점이 자리하고 있고, 그 삼각점과 더불어 헬기장이 자리하면서 정상석은 헬기장 가장자리 한쪽 구석에 서 있으므로 인하여 월이산 정상은 삼각점과 헬기장으로 인하여 너무나 천대를 받고 있는 산이 되어진다.

 

 

< 월이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삼각점" >

 

 

< 월이산 정상 헬기장 언저리 있는 "정상석" >

 

 

< 정상 가장자리에 있는 "무덤" >

 

정상에 서서 주변 풍경을 감상하여 보는데, 월이산은 순수 우리말로 달이 떠 오른다는 뜻을 가지는 "달이산" 이라고도 불려지므로 인하여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을 가지는데, 산의 뒤편으로 금강이 큰 물돌이를 만들면서 옥천군 이원면의 넓은 들력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 한폭의 산수화를 만들고 있다.

 

 

< 정상에서 내려보는 옥천군 "이원면" 전경 >

 

 

< 정상에서 내려보는 "서재마을" 전경 > 

 

일단 정상석을 배경으로 한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 정상의 반대편 방행에 있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먼저 도착한 동문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어 그들과 합류하여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는데, 대구의 총무가 준비한 많은 돼지고기와 더불어 막걸리로 먼저 갈증을 해소시킨다.

식사하는 장소가 다소 좁은 나무 그늘 아래가 되어지므로 인하여 3곳으로 분산하여 자리를 만들므로 단체로 건배하는 것을 생략하고 지역별로 건배를 하면서 맛 있게 점심식사를 하는데, 너무나 늦은 시간으로 인하여 마파람에 게 눈 감추는 심정으로 식사가 이루어진다.

 

 

< 좁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점심식사" 하는 동문 >

 

 

< 다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점심식사" 하는 팀 >

 

그러고 나서 총무의 안내에 따라 다시 정상석이 있는 헬기장으로 이동하여 등정식을 하기로 하는데, 오늘은 6.25 전쟁이 발생한 날의 66주년이 되어지므로 인하여 먼저 선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더불어 백봉회 제290봉 등정식을 거행하는데, 서울 동문과 함께 교가를 불려보므로 인하여 더욱더 힘찬 노래가 되어진다.

 

 

< 월이산 정상에 있는 헬기장에서 "등정식" 을 행하는 동문 >

 

간단하게 등정식을 끝내고 나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 한장을 찍어보기로 하는데, 정상석이 헬기장 구석자리에 자리하므로 인하여 24명이 정상석 주변으로 모여 기념사진을 찍기에 다소 어색한 장소가 되어져 좋은 사진을 찍지 못하여 아싶다.

 

 

< "정상석" 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 > 

 

이윽고 하산길로 들어가기로 하는데, 하산길은 월이산 정상으로 올라오는 길의 반대 방향이 되어지는 능선으로 하산하면서 처음에는 다소의 암벽으로 내려가는 위험한 길이 되어지지만 이내 울창한 숲속으로 길이 만들어져 있어 매우 상쾌한 길이 되어진다. 

 

 

< 하산길도 울창한 "소나무" 로 이루어지고 있는 오솔길 >

  

약 30분 정도 하산하면 또 다시 3거리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직전의 방향으로 계속하여 걸어가면 월이산을 종주하는 능선길이 되어지고 왼편 급경사의 내리막 길은 서재마을로 내려가는 지름길이 되어지므로 인하여 오늘은 여기까지 산행을 하기로 하면서 지름길 방향으로 하산하기 시작한다.

 

 

< "서재마을" 을 가르키는 이정표 >

 

하산길로 한 20여분 정도 내려가면 서재마을 뒤편이 되어지는 밭 언저리에 도착하여 지고 농로길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서재마을의 중심지를 통과하게 되어지는데, 아담한 서재마을은 월이산이 병풍 같이 둘려쳐 있어 바람 한점 일어나지 않을 동네가 되어진다.

 

 

< 서재마을 가장자리에 있는 "밭과 농로길" >

 

 

< 월이산이 병풍과 같이 둘려쳐 있는 "서재마을" >

 

마을 중심지에 있는 느티나무와 더불어 정자를 지나면서 오른편에는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가 있지만, 산행길은 계곡 따라 계속하여 내려가면 옥계폭포 입구에 기술하고 있는 일지명상센터와 천화원이라는 건물이 나타나는데, 일지명상센터와 천화원에는 명상 수련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거하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 서재마을 중심지에 있는 "느티나무와 정자" >

 

 

< "일지명상센터" 의 합숙 건물 >

 

 

< "천화원" 으로 들어가는 입구 > 

 

 

< 명상 수련원 가장자리에 있는 "휴식처" >

 

명상 수련원을 통과하여 계곡 가장자리로 만들어져 있는 오솔길 따라 한참 내려가면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였던 3거리 지점에 도착하여 지고, 여기에서 부터 산행길 따라 조금 내려가면 옥계폭포 상부가 되어지는 개울에 도착하면서 일행은 산행에 따른 피로를 풀기 위하여 물에 발을 담그고 씻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 옥계폭포 상부 개울에서 "발" 을 씻고 있는 동문 >

 

후미팀의 합류로 인하여 다시 조금 더 하산하여 처음 출발한 옥계폭포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금일 백봉회 합동산행을 오후 4시 40분 경 무사히 끝내고, 각자의 마이크로 버스에 탑승하여 상호 우정을 돈독하게 하는 뒤풀이 행사를 하기 위하여 사전 답사를 통하여 파악한 황간에 있는 음식점으로 달려간다.

영동시가지를 통과하여 약 20분 정도 달려가 황간시가지 입구에 있는 "홍삼빠가매운탕" 식당에 도착하여 지면서 사전 전화 예약하여 놓은 좌석에 앉자마자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이곳 금강에서 잡은 피리로 만든 "도리뱅뱅" 이와 더불어 맥주잔을 채우고 나서 서울 동문 회장이 건배사를 올리기로 하는데, 건배사는 "백두산" 으로 한다고 하면서 "백" 은 백세까지, "두" 는 두발로, "산" 은 산에 함께 가자고 한다.

 

 

< "홍삼빠가매운탕"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 >

 

 

< "홍삼빠가매운탕" 식당의 음식 가격표 >

 

 

< 자리에 앉자 식사를 즐기는 "동문" >

 

 

< 먼저 나오는 "도리뱅뱅" >

 

아울러 이 식당의 특미가 되어지는 홍삼 빠가매운탕이 대령하는데, "빠가" 라는 물고기는 쏘가리와 비슷하게 어린 물고기를 먹이로 하는 육식 물고기로 잡은 고기가 땅으로 올라오면 "빠가빠가" 하는 소리를 낸다고 하여 빠가사리 라고 하는데, 매운탕을 만들면 매우 담백한 맛을 가진 물고기 이라고 한다.

 

 

< 연이어 나오는 "빠가매운탕" >

 

 

< "빠가 물고기" 가 유영하고 있는 수족관 >                 

 

단백한 맛으로 인하여 한공기의 밥과 더불어 많은 국물 및 주인장이 무한정으로 써비스 하여 주는 수재비를 먹으면서 이야기 시간을 가지지만 무한정 머뭄이 불가능하여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하는데, 이별은 언제나 슬픔이 발생하지만 그래도 내년을 기약하면서 아쉬움의 헤어짐 시간을 가지도록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