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문화 및 박물관.

다시 찾아가는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동 고분군 아래에 있는 "대가야 박물관" 돌아보면서.

용암2000 2017. 9. 19. 12:53

2017년 9월 15일.(금요일)

 

오전에 고령군 쌍림면에 있는 "김면" 장군 유적지를 관람하고 나서 대가야읍 시가지로 들어가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는데, 대가야읍 지산동 고분군 앞에 있는 대가야 박물관을 통과하여 시가지 도로변에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가서 뚝배기로 식사를 하여본다.

고령군은 인구 약 3만 5천명이 거주하는 도농복합 고을로 1개의 읍과 7개의 면을 이루어져 있는데,1979년 행졍개편에 따라 고령면에서 고령읍으로 승격이 되고 2015년에 고령읍에서 다시 대가야읍으로 명칭을 변경되었다고 한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서 다시 지산동 고분군 방향으로 돌아가서 대가야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하는데, "대가야 박물관(大加耶 博物館)" 은 2010년 9월 23일에 방문하여 나의 불로그에 기술한 곳이지만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나가므로 인하여 재 방문을 통하여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 주위를 돌아보면 박물관 건물 뒤편으로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함께 하는 박물관은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는데, 김해 대성동 고분군 및 함안 말이산 고분군과 함께 세계 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하여 그 결과가 2020년에 발표가 된다고 한다.

 

        < 지산동 고분군과 함께 하고 있는 "대가야 박물관" 전경 >

 

         < "세계 유산" 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는 입간판 >

 

대가야 박물관의 관람 코스는 크게 3곳으로 나누어지는데, 박물관의 메인이 되는 대가야 역사관 건물을 중심으로 건물 주변에 있는 야외 전시장 및 왼편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대가야 왕릉 전시관으로 나누어지므로 먼저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역사관으로 돌아 보기로 한다.

 

              < 대가야 역사관 입구에 있는 "항아리 받침대" >

 

           < "대가야 박물관" 의 조감도 >

 

역사관 입구로 들어가면 왼편으로 매표소가 자리하므로 경로(敬老)의 혜택으로 입장권을 발권하고 관람의 효율적 제고(提高)를 위하여 오른편에 대기하고 있는 문화 해설사에게 설명을 부탁 할려고 하니, 아직 점식식사 시간이라 조금 기다림을 가지면 좋겠다고 한다.

 

     < 대가야 역사관 내부 오른편에 있는 "문화 해설사" 대기소 >

 

대가야 역사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지는데, 1층 기회전시실에는 새로운 유물을 전시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단계에 있으므로 관람이 불가능하여 지고 2층 상설전시실로 안내하면서 입구에 있는 의자에 앉아 조금만 기다림을 가지면 바로 해설사 올라오겠다고 한다.

 

              < "대가야 역사관" 내부 조감도 >

           < 2층 전시실 입구에 있는 "6개 가야국" 분포도 >

 

이내 해설사의 안내와 더불어 전시실로 입실하는데, 전시실 내부는 대가야 역사를 중심으로 고령지역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구석기시대 부터 근대에 이르는 역사와 문화를 전시한 부스 따라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하므로 무지를 깨우치게 하여 준다.

전시실의 내용은 대가야의 여명, 대가야의 성립, 대가야의 성장과 발전, 대가야 이후의 고령의 테마로 관람할 수 있다고 하면서 초입에 장기리 암각화 모형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 고령지역에는 구석기시대 부터 인류가 살았던 흔적으로 장기리 및 안화리에서 암각화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암각화로 울산 반구대(盤龜臺)와 더불어 울산 천진리 및 고령 장기리 암각화를 대표하는 암각화 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있는 장기리 암각화를 모형으로 만들어 원시인들이 그린 암각화의 표시 그림 하나 하나를 설명하여 준다.

 

             < 고령지역에 있는 "장기리 암각화" 모형 >

 

암각화 모형 주변으로 선사시대에 사용한 석기(石器) 제품과 더불어 돌을 가공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 디오라마(Diorama)를 전시하고 있어,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의 전시실이 된다.  

 

              < 돌을 가공하는 "디오라마" 모형 >

 

            < 고령지역 "선사시대" 의 현황 안내문 >

 

내부로 들어가면 이곳 고령지역에는 "대가야(大加耶)" 라는 나라가 존재하면서 대가야의 건국신화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을 소개하고 있는데, 대가야 역사는 "최치원" 선생님이 쓴 석순응전(釋順應傳)을 조선시대에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면서 인용한 부분과 더불어 삼국유사에서 그 어원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하늘의 신이 되는 이비가(夷毗訶) 신과 함께 가야산 정상 언저리에 있는 상아덤에서 살면서 2명의 아들을 두는데, 첫째 아들은 대가야의 시조가 되는 이진아시(伊珍阿豉)왕이 되고 둘째 아들은 금강가야의 시조가 되는 수로(首露)왕이 된다고 한다.

더 내부로 들어가면 대가야는 토기 및 철(鐵)을 많이 생산하므로 매우 부강한 나라가 되는데, 토기와 철을 생산하는 과정과 더불어 다양한 제품을 전시하므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고령지역 "토기와 철" 을 생산하는 모습 >

 

       < 고령지역에서 생산한 "토기와 철" 제품 >

 

아직도 고분군이 있는 주산과 지맥으로 연결하고 있는 미숭산 언저리에는 철을 생산하였던 흔적과 더불어 철광석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데, 한 코너에는 좌석과 철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철광석의 붙은 강도를 실험하는 체험장을 만들어 놓고 있다.

 

                  < 1950년대의 "지신동 고분군" 모습 >

 

             < 자석과 붙은 "철광석" 체험장 >

 

내부로 더 들어가면 초기 가야시대에 만든 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고, 후기에는 대가야가 신라에 흡수되므로 신라시대에 생산한 토기를 병형하여 전시하고 있어 상호 차이점을 알게하여 준다.

 

            < 가야시대에 만든 "토기" >

 

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열의 팽창으로 인하여 가라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토기 몸통 부위에 많은 구멍을 뚫어 주는데, 대가야를 비롯하여 6가야 토기의 구멍은 아래 위로 일적선으로 뚫지만 신라의 토기는 지그재그로 뚫기 때문에 확연하게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 가야시대 및 신라시대의 "토기" 비교 전시품 >

 

다음 부스로 넘어가면 5개의 왕관을 전시하고 있는데, 오른편으로 지산동 고분 제30호에서 발굴한 어린이 금동관 모형을 두고 중앙의 2개의 왕관은 지산동 고분군에서 출토한 왕관이며 그 옆에 있는 2개의 왕관은 일본에서 출토되어진 금동관의 모형이라고 한다.

 

            <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는 5개의 "왕관" >

 

세계에서 순금으로 만든 금관이 10개가 출토 되어지면서 아프가니스탄에 1개 스키타이에서 1개가 출토 되었고 나머지 8개 금관 모두가 한국에서 출토되데, 그 중에서 경주에서 6개가 출토되고 나머지 2개는 이곳 대가야 고분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 "신라와 대가야 금관" 의 비교 >

 

한개의 금관은 꽃봉우리형 금관으로 국보 제138호로 삼성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는 "리움 박물관" 에 소장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의 금관은 풀입형 금관으로 일본 "오쿠라 콜렉션 박물관" 에 소장하고 있고, 제일 오른편에 있는 반쪽 짜리 어린이 금동관의 모형이면서 진품은 옆에 있는 테이블에 전시하고 있다.

 

                    < 국보 제138호가 되는 "꽃봉우리형 금관" 모형 >

 

            <진품을 전시하고 있는 "어린이 금동관" >
 

왼편에 있는 2개의 모형은 일본에서 발굴한 왕관 및 은관으로 만든 기법이 대가야에서 발굴한 왕관과 비슷하므로, 제작 기술자가 대가야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만든 모형이라고 한다.

금관 주변으로 금귀고리, 팔찌, 목걸이 등을 비룻하여 다양한 장식품들이 전시하므로, 대가야가 전세계를 상대로 교역 하였다는 것을 알게하므로 얼마나 부강한 나라인가를 인지하게 한다. 

 

        < 대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

      < 고분군에서 출토 되어진 "목걸이" 등 >

 

다음 전시장으로 넘어가면 가야인들이 사용한 검과 더불어 말안장, 투구, 갑옷, 갈고기 등 철제 제품을 전시하고 있고, 그 다음 부스에는 대가야 이후에 사용한 그릇 및 옷, 생활 용품, 곡식 등을 전시하고 있지만 어느 전시장이나 동일하게 해설사는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바쁘게 다음 코너로 넘어간다. 

 

              < 가야지역에서 출토한 "토기" >

 

               < 가야지역에서 출토한 "갑옷" 등 >

 

             < 가야인들이 사용한 "철제 제품" >

           < 가야인들이 사용한 "그릇" 등 >

 

마지막 부스에는 다양한 부장품을 장식하고 있는 말과 더불어 반룡사의 동종, 개포동 석조관음좌상의 모형, 고려 및 조선의 유물을 시대별로 진열하고 있어 고령지역에서도 다양한 불거리를 제공하여 주는 역사관이다.

 

          < 철로 만든 부장품을 사용하고 있는 "말" >

          < 고령지역에는 유명한 사찰이 되는 "반룡사" 의 동종 >

 

              < 대가야에서 출생한 "우륵선생" 의 가야금 >

 

                  < "고려 및 조선시대" 에 생산한 유물 >

 

           < 전시하고 있는 "호구단자" >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간략하게 해설을 끝내고 해설사는 돌아가고 주변을 다시 돌아보는데, 2층 박물관 뒤편이 있는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가면 대가야 시대의 왕과 왕비의 생활을 재현한 대가야 궁이 만들어져 있다. 

 

             < 테라스로 나가면 만나는 "대가야 궁" 전경 >

 

이렇게 간단하게 역사관 관람을 끝내고 건물 주변으로 산재하고 있는 야외 전시장을 돌아보는데, 야외 전시장 곳곳에는 대가야 시대에 거주한 가옥을 비롯하여 고령지역에서 발굴되어진 석조물을 전시하고 있어 힐링과 더불어 관람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된다.

 

              < 야외 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는 가야인의 "가옥" >

               < 철을 생산하는 "도가니" 모형 >

 

               < 야외 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는 "석조물" >

 

마지막으로 왕릉 전시관을 관람하기 위하여 언덕 위로 올라가는 길의 좌우에는 대가야의 역사를 기록하여 놓고 있는데, 대가야는 개국에서 부터 멸망하기 까지 모든 과정을 일목요악하게 그림과 함께 기술하므로 가야사를 공부하기에 안성맞춤의 길이 된다.

 

              < "왕궁 전시관" 으로 올라가는 길 >

 

가야국들의 멸망을 살펴보면 대부분 가야국은 각각 연맹체로 구성되다 보니 상호 합병이 이루어져 멸망 시기가 불분명하지만, 김해지역에서 번창한 "금관가야" 는 서기 400년 무렵 고구려 광개토왕의 공격을 받은 뒤 쇠퇴하기 시작하여 서기 532년 신라 법흥왕 19년에 신라에 항복한다. 

아울러 대가야는 5-6 세기 까지 매우 번창하여 위세를 떨치면서 이곳 고령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 전라남도 및 전라북도 면적의 반 정도 점유하는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과의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국가이라고 한다.

이렇게 부강한 대가야는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다가 오히러 대패하여 결국 신라 진흥왕 562년 "이사부" 가 이끄는 군대의 공격을 받고서 항복하는데, 그 때가 대가야의 16대 "도설지왕" 시대이라고 한다. 

 

            < 비탈면 옆 "가야사" 를 요약한 내용 >

 

일단의 축대 위로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어린이 체험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어 내부로 들어가 보는데, 어린이에 적합하게 역사를 공부하게 하도록 다앙한 모형과 퍼즐, 탁본, 인쇄 장치를 만들어 놓으면서 체험을 통하여 역사를 공부 하기에 용이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 왕궁 전시관 입구 오른편에 있는 "어린이 체험관" >

                 < 어린이 체험관 내에 보유하고 있는 각종 "퍼즐" >

 

어린이 체험관 옆에 둥근 무덤 형태의 왕릉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앞에서 구입한 입장권을 제출하면서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니 마침 해설사가 선행하고 있는 관광객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어 꽁무니에 따라가 보기로 한다.

 

                       < 지산동 제44호 고분을 재현하고 있는 "왕궁 전시관" >

 

지산동 고분군에서 총 700여 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는데, 왕릉 전시관은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殉葬)무덤이 되는 지산동 제44호 고분 내부를 원형 그대로 재현하므로 그 당시 순장의 내력을 알게하여 준다.

관광객은 실물의 크기로 복원한 제44호 고분 속으로 직접 들어가 무덤의 구조 및 축조 방법, 무덤의 주인공 및 순장자들의 매장 모습, 부장품의 종류 및 성격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조성되어진 무덤 전시관이다.

 

               < "왕궁 전시관" 내부 모습 >

 

무덤 내부 벽면 따라 다양한 설명문과 더불어 함께 부장품을 전시하므로 순장에 대한 인식을 높게 만들어 주는데, 해설사는 벽면에 전시하고 있는 유물은 경북대학교 박물관 또는 역사관에 소장하므로 여기에 전시하고 있는 것 대부분은 모조품이라고 한다.

 

                          < 고분의 "요약도와 설명문" >

 

왕릉 순장 무덤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돌출 전망대로 올라가 왕의 무덤과 더불어 순장자의 무덤 내에 있었던 유골을 설명하여 주는데, 유골 형상을 보면 모두가 살해를 당하여 묻혀져 있어 순장자의 슬푼 이야기를 설명하여 준다.

중앙에 있는 왕의 무덤에는 주변으로 돌로 쌓은 벽면 속에 왕의 시신을 넣은 관이 있으면서 머리와 발 아래에 또 다른 순장자와 함께 하므로 한 무덤 속에 3명의 시신이 자리하고 있고, 주변으로 산재하고 있는 작은 무덤에서는 약 30여 명의 순장자 해골이 출토 되었다고 한다.

 

           < 머리와 발 아래 순장자와 함께 하고 있는 "왕" >

 

순장이란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이나 동물을 죽여서 함께 매장하는 "장례행위" 를 말하는데, 사람을 죽여서 다른 사람의 장례에 사용한다는 것은 강력한 권력을 소유한 통치자 집단의 지배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고대 세계에서는 리 성행한 풍습이라고 한다.

이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삶을 계속한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의 계세사상(繼世思想)에 따라 이승에서의 생활을 저승에서도 그대로 누릴 것이라 미에서 행한 것이라 하는데, 절대 권력자는 죽어서도 살아있는 사람을 지명하여 함께 묻혀지므로 도망자가 발생하여 빈 순장 무덤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30대의 남자와 8세 정도 여아가 함께 묻혀 있는 모습과 더불어 10대 소녀 2명이 나란이 묻혀 있는 모습 등 30여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순장 되어졌다는 무덤 내부 형태를 보고 있으니, 순장이 얼마나 잔인한 무덤인지 소름이 끼치게 만든다.

 

            < "순장자" 가 묻혀 있는 모습 >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시작할 때 무덤 내부로 공기의 완전 차단하므로 약 30기 이상의 해골이 원형 상태로 발굴이 되어졌고, 발굴한 순장자 해골을 조사한 결과에 따라 남자 또는 여자, 어린이, 노인, 청년 등 다양한 시신이 함께 하므로 순장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관 곳곳에 영상물을 방영하면서 순장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지만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계속하여 전진하면서, 다양하게 숨겨진 순장 이야기와 더불어 출토 되는 유물을 설명하여 준다.

 

             < 무덤 내부 벽면에 전시하고 있는 "유물" >

 

이곳도 다소 빠르게 관람을 끝내고 나서 왕릉 전시관을 탈출하여 전시관 앞에 있는 제30호 고분으로 이동하여 고분의 내력을 설명하여 주는데, 이곳 30호 고분은 어린이 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도굴이 되지 않으므로 거의 원형으로 보존이 되면서 많은 유물이 출토가 되는데, 특히 역사관에서 보았던 어린이 금동관이 이곳 제30호 고분에서 출토되어진 작품이라 하겠다.

 

            < 왕릉 전시관 앞에 있는 지산동 "제30호 고분" >

           < "제30호 고분" 에 대한 안내문 >

 

박물관을 떠나기 전 제30호 고분으로 올라가 주변을 돌아가면서 한가지 소원을 빌면 반듯이 소원 성취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하면서 무덤을 한바퀴 돌아 보라고 하면서 해설을 종결하는데, 제30호 고분으로 올라가 무덤을 한바퀴 돌면서 마음의 소원을 읍조려 본다.

 

                < 제30호 고분 건너편 능선에 있는 "제1호" 고분 >

 

               < 제30호 고분을 돌면서 바라보는 "대가야 역사 테마 관광지" >

 

이렇게 옛날에 한번 관람하였던 대가야 박물관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주차장으로 내려가 승용차를 몰고, 대가야 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대가야 역사테마 관광지" 를 구경하기로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