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문화 및 박물관.

경상남도 고성군에 있는 "고성박물관" 및 소가야의 유적지가 되는 "송학동고분군" 을 돌아보고.

용암2000 2017. 12. 27. 21:32

2017년 12월 25일. (월요일) 

 

현 정권에서 가야사(伽耶史)를 재 조명하기 위하여 새롭게 검토 하겠다는 이야기로 다른 지역의 6개 가야(고령의 대가야, 김해의 금관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합천의 다라가야)는 방문한 경험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남겨져 있는 경남 고성 "소가야(小伽耶)" 를 방문하여 보기로 한다.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약 2시간 정도 달려가면 경남 고성읍에 도착하는데, 먼저 고성읍 중심지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들어가 분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인접하게 있는 고성박물관을 방문하여 본다.

 

              < 주차장과 함께 하는 "고성박물관" 입간판 >

 

          < 고성읍 시가지 중심지에 있는 "고성박물관" >

 

원칙적으로 오늘은 월요일이라 휴무의 날이 되지만, 크리스마스 이라는 공휴일로 박물관이 오픈하므로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서 박물관 정문을 통과하여 팜플릿 한장을 부탁하면서 해설을 요청하니 공휴일로 인하여 해설사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설사 없이 Wife와 둘이서 관람하여 보는데, 박물관 1층에는 역사도서관을 비롯하여 휴게실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휴게실에는 사단법인 한국각자협회 경남지회 회원 작품전을 개최하고 있다.

 

            < 1층 오른편에 있는 "역사도서관" >

 

         < 1층 로비 뒤편에 있는 "휴게실" >

 

그래서 박물관을 먼저 관람하기 위하여 2층으로 올라가면 2층에는 상설전시실을 비롯하여 기획 및 특별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 고성박물관 건립은 1999년과 2002년에 이루어진 사적119호 고성 송학동고분군 발굴조사의 성과로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고 한다.

고분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오랜 역사의 침묵을 깨고 고성 소가야의 찬란했던 문화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되므로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06년 부터 사적 보존 정책의 일환으로 박물관 건립이 계획 되었다.

2012년 5월 17일 고성박물관을 개관하면서 그로 인하여 고성지역에서 발굴한 선사시대 에서 부터 삼국시대 까지 발굴한 유적을 상설전시실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으며, 더불어 소가야의 유적과 유물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또한 기획 및 특별전시실을 통하여 다양한 창작 제품을 모아 전시를 계획하므로 고성의 예술 전반에 대해서도 홍보를 하고, 고성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은 탑방을 통하여 유구한 역사의 도시가 되는 고성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박물관에 상주하는 전문인력으로 전시 운영과 조사 및 연구를 통하여 삼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성의 전통과 문화를 전승하고, 소중한 문화재를 보존 및 관리하는 역사의 지킴이가 되는 반면 주민의 문화휴식의 공간으로도 충실히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측면으로 년도별 고성의 역사를 대비하고 있으므로 대충 읽어 보면서 2층 로비에 도착하면, 로비 중앙에 한마리의 말을 타고 있는 기마병 상(像이 자리하면서 각 부위에 무덤에서 출토 되어진 형상을 설명하고 있다.

 

     < 계단으로 올라가는 벽면에 "년도별" 고성지역에서 발굴된 역사의 대비표 >

 

         < 2층 로비 중앙 "기마병" 상의 각 부위에 붙어있는 유물 설명서 >

 

상설전시실 입구로 들어가면 먼저 구석기 및 삼국시대 고성 지역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고, 더불어 열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에서 나오는 소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당시의 유적 및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 "상설전시실" 입구에 붙어있는 고성의 역사 >

 

내부로 들어가면 먼저 인류의 시대별 변천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한반도의 구석기시대는 약 70만 년 전 부터 시작을 하면서 구석기인들은 뗀석기를 사용하며 동굴이나 강가에서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였다.

 

              < "인류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모형 >

 

고성군의 인근 지역에 있는 진주시 월평리 및 사천시 이금동 등 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고성지역 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인접한 통영의 욕지도, 상노대도, 연대도 패총과 사천시 구평리 유적의 분포 양상을 미루어 보아 고성지역에서도 동일한 신석기문화를 형성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 "구석기 및 신석기" 시대 사용한 전시품 >

 

청동기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벼농사의 시작과 계급의 분화이면서 계급사회의 증거로 고인돌(支石墓)과 여기에서 발굴된 동검(銅劍) 등의 유물을 들 수 있는데, 고성에 분포하고 있는 다수의 고인돌과 돌널무덤 및 집터 등은 고성에서의 활발했던 청동기 문화를 알려준다.

 

                      < "청동기시대" 의 유물 >

 

청동기시대 고성의 주요 유적으로 하일면 오방리 및 학림리 고인돌과 하이면 석지리 고인돌이 있고, 고성읍 교사리와 상리면 무선리 및 마암면 두호리에서는 청동기시대 돌널무덤과 집터가 발굴조사 되었다고 한다.

 

          < 고성 지역 "구석기와 청동기 및 삼국시대" 의 변천사 >

고성의 옛 지명 이름은 삼국지 위지 동의전에서 "고자미동국" 으로 불려졌으며 현재 고성의 한자로 굳을 "고(固)자" 와 성곽을 나타내는 재 "성(城)자" 를 쓰고 있는데, 이것을 방언으로 재미 또는 자미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결국 고성 = 고자미 또는 고자국, 고차국 이라는 뜻을 가지면서 예 부터 고성은 "단단한 성곽"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것 처럼 고성에서는 20여 개의 성곽이 산재하고 있다고 한다.   

 

             < 고대 고성의 "지명" 변천사 >

 

            < 철기시대에 사용한 "철검" >

다음 부스로 이동하면 소가야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데, 고대로 부터 해상 세력으로 발전하여 왔던 소가야는 5세기 한반도 남부지방의 교역과 물자 이동의 중심지로서 활약하였다.

 

              < "소가야" 시대에 사용한 토기 >

 

5세기 후반 고구려의 남진은 한반도 남부지역의 정세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고, 지리적으로 남해안의 중심에 위치하여 해상활동에 능하였던 소가야는 남해안을 배경으로 교역 및 운송의 중심역할을 하며서 번성하였다.

 

      < 소가야의 "해상활동" 을 전개하는 루트 >

  

그 증거로 송학동고분군은 이 시기에 축조가 되었으며, 고성의 고분군에서는 소가야의 문화를 바탕으로 백제와 신라 및 영산강 세력, 대가야, 왜국의 문화 요소가 모두 발견되었다고 한다.

 

                     < "전시실" 내부의 전경 >

 

               < "송학동고분군" 에서 출토한 토기 >

 

                 < "송학동고분군" 의 내부 모형 >

 

고분(古墳) 이란 봉분을 가진 삼국시대 분묘로서 축조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장의문화로서 동일한 정치 내에서는 유사한 축조방법과 유물 부장 풍습을 공유하면서 교류의 흔적으로 외부의 장의요소가 유입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서 소가야의 중심지가 고성(固城)이라 하고 있는데, 고성읍을 중심으로 소가야의 왕묘 혹은 수장의 묘를 볼 수 있는 직경 25m 이상의 대형고분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특히 대형분이 되는 송학동(松鶴洞) 제1호 고분을 비롯하여 기월리 고분이 고성읍에 위치하는 것은 소가야 세력의 지배적 헤게모니(Hegemony)를 가진 집단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을 반증한다.

동해면 내산리에 위치한 내산리고분군과 영오면 연당리에 위치한 연당리고분군은 외부에서 고성읍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각각 해상과 육상의 관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성지역에는 이 밖에도 30여 개소에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들 고분군은 소가야 지역 내에서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지역 세력들이 조영한 것으로 당시 송학동 고분군을 중심으로 한 소가야 정치 체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 소가야" 고분군의 안내문 >

 

                  < 고성 고분군에서 발굴한 "유물" >

 

                   < 고성 고분군에서 발굴한 "목걸이 및 귀걸이" >

 

                  < 고분에서 출토한 "새무늬 청동기" >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신문왕 5년(685년)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정비하였는데, 이때 청주(진주)를 설치하고 그 밑에 고자군(古自郡)을 설치하였으며 이후 경덕왕 16년(757년) 고자군(古自郡)을 고성군(固城郡)으로 개칭하게 된다.

이후 고성은 1900년 진남군이 설치되어 지금의 통영에 속하는 도선면, 광이면, 광삼면이 진남군에 편성되기 전 까지 서부경남 해안지역의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 매김하여 왔다고 한다.

이렇게 고성군의 역사와 더불어 출토 되어진 유물을 벽면 따라 질서 정렬하게 진열하면서 설명을 기술하고 있는데,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설명을 읽어보면서 전시장을 관람하고 마지막으로 전시실 제일 뒤편으로 이곳 소가야의 대표적 고분이 되는 송학동고분군의 모형이 만들어져 있다.

 

                  < 벽면 따라 전시하고 있는 "전시품" >

 

               < 다양한 종류의 "그릇" >

 

                    < 전시하고 있는 "칼" >

 

      < "화살촉 및 도구" 의 전시품 >

제일 마지막에는 지금 까지 관람한 고성군의 역사를 조명하는 영상관과 더불어 고분군에서 발굴 되어진 유물을 체험하는 복제실이 마련되어 있어 고성박물관을 관람하였다는 기념품을 남기기 위하여 한장의 복사본을 만들어 본다.

 

          < "소가야" 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디오라마 >

 

다시 중앙 로비로 나와서 상설전시실의 반대편이 되는 오른편 방향으로 들어가면 특별전시실 및 기획전시실이 자리하고 있는데, 특별전시실에는 고성의 발굴 유적 및 유물 테마전을 열리고 있지만 전시품이 너무나 빈약하다.

 

          < 특별전시실에서 개최하고 있는 "테마전" >

 

             < 테마전에 전시하고 있는 "유물" >

이렇게 고성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서 박물관 뒤편으로 이어지는 송학동고분군으로 올라가는 나무테크 계단이 자리하고 있는데, 계단을 이용하여 송학동고분군으로 올라서면 먼저 입구에 고분군 내력을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이 자리하고 있다.

 

                  < 고성박물관에서 "송학동고분군" 으로 올라가는 나무테크 길 >

 

              < 반대편 주차장 가장자리에 있는 "송학동고분군" 안내문 >

고성읍 송학동고분군은 당시 정치적 세력자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7기의 가야 무덤들로써, 가야시대 대표적 축조 방법인 수혈식 석실분 구조와 횡혈식 및 횡구석식 등 다양한 형태의 고분이다.

만들어진 시기는 400년을 중심으로 앞 뒤 50년의 범위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고분은 전방후원 분으로서 논란이 되어왔던 1호 무덤이 있으며 점차 밑으로 내려가면서 나머지 6기의 무덤들이 자리잡고 있다.

 

              < "송학동고분군" 의 전경 >

 

고성읍 무기산(舞妓山)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구릉 주변에 있는 송학동고분군을 비롯하여 북쪽으로 300m 거리에 기원리 무덤들이 있고, 동쪽으로 300 - 400m 거리에 송학동 조개더미가 있어 삼국시대 소가야의 자리를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제1호 무덤은 겉 모습에서 일본 고분시대에 많이 나타나고 있는 앞이 네모가 나고 뒤가 둥근 무덤인 전방후원 무덤으로 보여지기도 하나, 발굴조사 결과 흙을 쌓아 구릉 처럼 만든 뒤 돌무덤방을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 송학동고분군 중 제일 상부에 있는 "제1호 고분군" >

 

이들 7기의 무덤은 1호 고분인 무기산 무덤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1호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는 딸린 무덤(배총)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호분 B지구 고분은 횡혈식 석실분으로 내부가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국내 최초로 확인된 채색 고분이 되는데, 이곳에서 출토되어진 유물이 신라, 백제, 일본, 가야 지역의 다양한 유물로 확인되고 있어 일본과의 관계 확인을 위하여 고고학계의 중요한 연구자료로 가치가 높아 일본 학계에서도 많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잘 다듬어진 잔디와 더불어 무덤 주변으로 만들어져 있는 오솔길 따라 한바퀴 돌아보면 고분의 주변으로 고성읍시가지와 빌딩들이 고즈넉하게 자리하므로, 우리의 옛 조상은 삶과 죽음이 하나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3개의 본봉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송학동 제1호 고분"  >

 

             < "고성읍시가지" 와 함께 하는 고분 >

 

             < 고분군에서 바라보는 "거류산" 전경 >

 

                 < 고분 사이로 만들어진 "트레킹 길" >

                 < 고분군 사이를 거닐고 있는 "관람객" >

                < 고분군과 함께 하는 "고인돌" >

 

아침에 출발 할 때 다소 쌀쌀한 날씨가 되었지만 이제는 많이 풀린 날씨로 인하여 어린이와 함께 하는 주부들의 발길이 곳곳에 보이고 있는데, 웅크리고 집에 있는 것 보다 이렇게 자연과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이번 탐방기에서 나의 체험 보다 고성박물관에서 홍보하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많이 모방하기로 다짐하고, 차량이 주차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다시 내려와 박물관 1층에 전시하고 있는 한국각자협회 회원전을 관람하여 보기로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