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문화 및 박물관.

경상북도 성주군에 있으면서 새롭게 개관한 '성주 성산동 고분군 전시관' 을 돌아보면서.

용암2000 2021. 5. 3. 22:53

 

2021년 4월 30일.(금요일)

 

* 성산 고분군 전시관을 돌아보면서.

 

이목회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의 기성으로 외출을 자제하는 몇 명의 회원으로 인하여 모임을 단속하다가 실외(室外)에서 모임을 가져보자는 의견으로 모처럼 드라이브(Drive)를 즐겨 보도록 한다.

그래서 한 회원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나의 고향이 되는 경북 성주군에 산재하고 있는 관광지를 돌아보기로 하는데, 내가 수시로 방문 하면서 나의 블로그에 기술한 포천계곡과 함께 하고 있는 만귀정, 성주댐, 성밖숲, 성주읍성, 성주사고, 성주이씨(星州李氏) 시비공원 등을 먼저 돌아본다.

그러고 나서 성주시가지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성주 성산동 고분군 전시관' 을 관람하기로 하는데, 이곳 전시관에는 작년에 완공을 하였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개관을 연기하다가 2021년 4월 1일 오픈(0pen) 하였다고 한다.

 

< 새롭게 개관한 '성주 성산동 고분군 전시관' 전경 >

 

나는 가야(伽倻) 역사를 공부하기 위하여 고령의 대가야 박물관, 김해의 금관가야 박물관, 합천의 다라가야 박물관, 창녕의 비화가야 박물관, 함안의 아라가야 박믈관, 고성의 소가야 박물관을 비롯하여 경북대학교 및 계명대학교 박물관, 국립 대구박물관을 통하여 유물을 관람하면서 나의 블로그에 기술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6가야 중에서 가야사(伽倻史) 박물관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성주군의 성산가야에서 발굴되어진 유물 대부분은 일본으로의 밀반출 또는 계명대학교에서 발굴 및 소장하고 있는데, 성주군에서는 뒤늦게 박물관 보다 한 수 아래가 되는 전시관(展示館)이라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하여 고무적이라 하겠다.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821-4에 자리하고 있는 성주 성산동 고분군 전시관에는 상설전시실과 야외전시장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먼저 상설전시실로 들어가 내부를 관람하기로 한다.

입구로 들어가면 먼저 발열을 검사하고 나서 내부를 관람하기 시작하는데, 내부의 오른편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실과 가족 쉼터가 자리하고 있지만 어린이 체험실에는 예약을 통하여 주어진 시간에만 운영하므로 매우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만나는 '로비' >

 

< 전시관 입구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어린이 체험실' >

 

로비의 입구 오른편에 참외 아가씨가 반갑게 환영 인사를 하고 있으며 그 뒤편에 넓은 원형의 로비가 자리하고 있는데, 로비 벽면에는 성주의 중요 관광지 소개를 비롯하여 성산가야의 발굴 현황이 되는 야외전시장의 내역 및 승왜리지군에서 출도되어진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 이쁘게 환영 인사를 하고 있는 '참외 아가씨' >

 

< 성주군을 홍보하고 있는 '관광' 명소 >

 

< 로비 벽면에 부착되어 있는 '성산고분군' 발굴 내역 >

                                                                                                                                                   

< '야외전시장'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승왜리지군'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승왜리지군에서 발굴한 '유물' >

 

이곳 로비에서 상설전시실로 들어가면 입구에는 성주군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년표(年表)가 부착되어 있는데, 년표에는 고조선에서 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성주군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 및 중요 인물을 기술하고 있다.

 

< 로비에서 '상설전시실' 들어가는 입구 >

 

< 상설전시실 입구에 있는 성주군 '년표' >

 

< 가야시대 이전의 '성주군' 역사 >

 

더 내부로 들어가면 성산 가야고분군에서 출토된 4-6세기 무렵의 유물이 되는 토기류, 장식구류, 무기류 등 700여 점을 전시되어져 있는데, 단 시간에 전시실을 개관하다 보니 전시하고 있는 유물이 너무나 빈약하여 다른 지역의 박물관과 대비가 된다.

 

< 전시실 내에 진열하고 있는 '유물' >

 

일반적으로 역사책에 기술하고 있는 가야는 6가야(六伽倻) 라고 하는데, 성주에 있는 성산가야를 포함하여 대가야(고령), 금관가야(김해), 아라가야(함안), 소가야(고성), 고령가야(함창)로 구분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성산가야는 당시의 경산(京山 : 지금의 경북 성주) 지역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으면서 이를 '벽진가야(碧珍加耶)' 라고도 불려졌으며 삼국유사 지리지에서 고려시대 경산이라는 지명은 신라시대의 성산군(星山郡) 신안현(新安縣)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현재 성주군 성주읍에 해당되므로 오늘날에는 성산이라는 지명이 없어진 셈이다.

그런데 성산가야는 기록이 없어 어떻게 시작하였고 또 어떻게 망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실체를 밝혀주는 유적이 남아있는데, 그 유적이 성주읍 성산리에 있는 사적 제86호로 지정되어 있는 성산고분군 군락지이다.

이 밖에 성주군 선남면 신부동과 장학동, 금수면 명천동, 대가면 옥화동과 도남동, 월향면 인촌동 등에 흩어져 있는 많은 고분군들이 성산가야의 왕족 또는 지배 계층의 무덤으로 전하여 내려오고 있는데, 일제시대 대부분의 고분들이 도굴되어 완전하게 남아 있는 고분은 몇 기 없다고 보면 되겠다.

특히 성산가야는 '성주 성산동 고분군 발굴 조사 보고서' 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고고학적 조사와 검증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성주를 벗어나면 성산가야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본다.

성산리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1. 2. 6호 고분과 대분(大墳), 팔도분(八桃墳) 등 5기가 발굴되었고, 그 후 1988년 대구 계명대학교 박물관에서 5기(38, 39, 57, 58, 59호) 고분군에서 1.350여 점의 유물을 발굴하여 현재 계명대학교 박물관과 국립 대구박물관에서 일부 보관하고 있다.

 

< '상설전시실' 내부 전경 >

 

< 성산고분군에서 발굴한 '유물' >

 

< '가야토기' 에 대한 설명문 >

 

< '고분의 축조과정' 을 설명하고 있는 모형 >

 

전시관 제일 안쪽으로 '벌티1호 고분' 내부를 재현하고 있는데, 벌티 1호분은 6세기 전반에서 6세기 후반 경에 조성되어진 고분으로써 내부에는 중앙에 한기의 무덤이 있으면서 주변으로 8개의 무덤이 함께 하지만 순장의 형태는 아닌 것으로 추정을 한다고 한다.

이곳 벌티1호 고분의 중앙에 있는 무덤에서 방울 잔, 굽다리 접시, 굽다리 사발, 귀거리, 쇠 화살촉, 쇠창 등이 발굴 되므로 인하여 이곳 성산가야의 고분으로 성주 지역에서의 고분 문화 및 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 상설전시실 내부에 만들어져 있는 '벌티1호 고분' >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상설전시실을 구경하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성산고분 군락지를 한 눈으로 볼 수 있는데, 이곳 전시장 주변으로 일제 강점기가 되는 1917년 최초로 지표조사를 통하여 봉토분 46기가 확인이 된 이래로 1996년 129기와 2013년에 321기 및 최근의 정비 과정에서 2기를 추가하여 총 323기가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 '성산고분군' 의 조감도 >

 

< 성주의 진산이 되는 '성산' >

 

< 성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성산고분군' >

 

옥상에서 내려와 전시관 앞으로 만들어져 있는 야외전시장을 돌아보기 위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야외전시장에는 다양한 무덤을 재현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법수사 절터 배례석, 보월리 절터 주춧돌, 동자석인, 고인돌, 우믈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전시관 앞에 펼쳐지고 있는 '야외전시장' >

 

이 밖에도 성주 성산동 고분군의 하위 무덤에 속하는 장학리 벌티 유적과 차동골 유적의 일부 유구가 이전 및 복원하여 놓고 있는데, 고대 무덤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 야외전시장에서 재현하고 있는 '고분' >

 

성주군이 보유하고 성주 성산동 고분군 전시관이 출발점에서는 비록 보유하고 있는 유물들이 미미하지만. 일취월장(日就月將)하는 마음으로 발전에 거듭하여 다른 박물관과 대등한 유물을 보유하는 전시관이 될 것으로 믿으면서 다음 관광지가 되는 한개 민속마을을 구경하기 위하여 전시관을 떠나기로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