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 문화와 산행.

조선 숙종의 여인이 되는 인현왕후가 3년간 머물었다는 김천시 "청암사 및 극락전" 의 탐방.

용암2000 2017. 9. 27. 08:31

2017년 9월 17일.(일요일) 

 

오늘은 고향의 초등학교에서 6년간 동거동락한 몇 명의 동문이 객지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가 모처럼 대구를 찾았다는 소식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자는 제의로 나들이도 겸하면서 고향 성주 방향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성주에서도 환상적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성주댐 방향으로 들어갔다가 계속하여 운전하다 보니 어느 사이 한달 전 방문한 청암사의 암자가 되는 수도산(修道山) 수도암 언저리에 있는 무흘구곡에 도착한다.

 

                            < "무흘구곡" 을 알리는 입석 >

 

                        < 무흘구곡의 마지막 제9곡이 되어지는 "용추폭포" >

 

다시 무흘계곡 상부에 있는 수도암으로 올라가 경내를 한 바퀴 돌면서 구경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수도암에서 제일 효험이 있다는 나한전으로 들어 갈려고 하는데, 나한전 입구에서 산나물을 다듬고 있는 공양주 아주머니가 식당으로 내려가 점심식사를 하고 가라는 권유로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은 시기에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식당에는 자유 배식을 하면서 사찰 음식이 되는 산나물 반찬을 너무나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어 식판에 무엇을 먼저 담아야 할 지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지금 까지 나는 여러 차례 공양 음식을 먹어 보았지만 이곳 보다 다양한 반찬을 준비하고 있는 사찰은 처음 대면하는 것 같다.

일행은 어느 호탤 음식 보다 많은 음식을 먹고 인접하게 있는 수도암의 본찰이 되는 청암사를 구경하기로 하는데, "청암사(靑巖寺)" 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써 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古刹)이라 하겠다.

이곳 청암사도 몇 번 방문한 사찰이지만 일전 수도암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만난 인현왕후 트레킹 길에서 인현왕후가 이곳 청암사에서 약 3년간 머물었다는 것을 알고나서 부터 한번 더 방문하여 보고 싶었던 사찰이 된다.

 

            < "인현왕후 트레킹" 길에서 만나는 안내문 >

수도암에서 한참을 내려와 왼편의 다른 골짜기로 조금 들어가면 새롭게 만든 주차장이 나타나므로 주차를 하고 나서,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가로막을 지나면 왼편 도로변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과 청암사원(靑巖寺院) 이라고 새긴 바위가 길가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

 

              < 주차장에서 "청암사" 로 들어가는 초입길 >

 

             < 도로 가장자리 "청암사원" 이라고 새긴 바위 >

 

맑은 물이 흘려내리는 계곡을 옆으로 두고 조금 걸어서 올라가면 일주문에 도착하면서 일주문에는 "불영산청암사(佛靈山靑巖寺)" 라는 현판이 붙어있는데, 불영산은 해발 1317m가 되는 높은 산이지만 일반적으로 지도에는 수도산 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 계곡과 함께 하는 "청암사 길" >

             < 청암사의 첫번째 문이 되는 "일주문" >

 

여기 일주문에서 2개의 길로 나누어지면서 왼편으로는 차량이 다니는 길이 되고 일주문을 통과하여 바로 올라가면 두번째 문이 되는 천왕문(天王門)을 만나는데, 천왕문 내에는 사천왕 불상은 없고 벽면에 그린 그림을 대신하고 있다.

 

                     < 청암사의 두번째 문이 되는 "천왕문" >

 

천왕문 오른편 축대 위로 2채의 공덕비 건물이 지어져 있는데, 오른편 비각 건물에는 회당비각(晦堂碑閣)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왼편 비각 건물에는 대운당비각(大雲堂碑閣)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천왕문 오른편 축대 위에 있는 2채의 "비각" >

 

천왕문을 통과하면서 부터 오솔길이 되는데, 오솔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청암사 앞으로 흘려 내리는 개울을 건너가기 위한 작은 다리를 만나면서 다리 주변으로 암벽을 형성하고 있다.

 

             < 청암사로 들어가는 "오솔길" >

              < 개울을 건너는 "다리" >

               < 다리에서 바라보는 숨은 "폭포" >

 

다리 입구의 암벽 사이로 솟아나는 우비천(牛鼻泉) 이라는 옹달샘이 자리하고 있고, 다리 주위에 있는 암벽에는 사찰을 방문하였던 사람의 이름들이 많이 새겨져 있어 다소 보기가 흉축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 다리 좌우 암벽에 쓰여 있는 "글씨" >

 

작은 다리를 건너자 마자 왼편으로 돌아서 오는 차량 도로와 만남을 가지면서 청암사 경내에 도착하는데, 청암사는 경내 앞으로 흘려 내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있으면서 개울 앞에는 범종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도로와 만남을 가지면서 "청암사" 로 들어가는 입구 >

               < 개울 앞에 있는 "범종각" 건물 >

 

청암사 경내로 들어가는 극락교(極樂橋)를 건너면 조그마한 마당을 만나면서 마당의 뒤편 가장자리에 샘과 함께 거목의 보리수 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는데, 보리수 나무는 벌써 가을철의 상징이 되는 낙옆으로 변색을 준비하고 있다.  

 

              < 경내로 들어가는 "극락교" >

              < 마당의 가장자리 뒤편에 있는 "샘과 보리수 나무" >
 

마당의 좌측과 우측에 2층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좌측 루각 건물의 1층에는 종무소로 운영을 하고 있고 2층에는 정법루(正法樓) 라는 현판과 더불어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우측의 중현당(重玄堂) 이라는 요사채 건물에는 공사로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 사찰의 입구 왼편에 있는 "정법루" >

 

             < 사찰의 입구 오른편에 있는 "중현당" >

 

샘의 옆으로 만들어져 있는 돌계단으로 올라서면 "ㄱ자" 형태의 진영각(眞影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물에도 옆에 있는 중현당 건물의 공사로 발생하는 먼지의 비산을 억제하기 위하여 흰색의 천으로 가리고 있어 매우 산만한 분위기가 된다.

 

              < 흰색의 천으로 가리고 있는 "진영각" 건물 >

 

진영각 건물 왼편이면서 정법루 건물 뒤편이 되는 곳에 아담한 마당이 자리하면서 마당의 중앙에서 다소 오른편으로 치우치는 방향으로 다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고, 2단의 축대 위로 주불은 모시고 있는 대웅전(大雄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중앙에서 오른편으로 치우쳐 있는 다층 석탑과 함께 하는 "대웅전" >

 

이곳 청암사는 조선 인조 25년(1647년) 화재로 전소(全燒)되었으나 벽암(碧巖) 및 각성(覺性)스님이 이 소식을 전해듣고 그의 문도(門徒)가 되는 허정(虛靜) 및 혜원(慧遠)스님으로 하여금 재건토록 하였는데, 이에 혜원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청암사를 중창하였다고 한다.

불당 내부를 들어다 보니 청암사에는 좌우 협시불을 두지 않고 중앙에 오직 한분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이 부처님도 새로운 옷(개금)으로 갈아입기 위하여 출타 중에 있다는 안내문 따라 거의 불자가 찾지 않은 본당이 된다.

 

           < 자리를 비우고 있는 "부처님" 자리 >

 

본당에서 내려와 오른편으로 이동하면 비구니 스님을 양성하는 승가대학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청암사 승가대학은 벽암 및 각성의 강맥을 이어오는 대화엄 종장 모운진언(暮雲震言 : 1622-1703년)스님이 청암사를 전문 강원으로 개설한 것을 효시로 하고 있으며 그 이후 허정(虛靜) 및 혜원(慧遠) 스님이 강교(講敎)와 설선(設禪)의 꽃을 피웠다.

 

           < 본당 오른편에 있는 승가대학 "육화당" >

 

조선 숙종 37년(1711년) 경 벽암와 각성, 모운진언, 보광 원민조사의 법맥을 이은 화엄학의 대강백 회당 정혜(定慧 : 1685-1741년)조사는 청암사 강원을 발전시킨 스님으로써, 그 당시 청암사는 불교 강원(講院)으로서 명성을 날렸으며 운집한 학생의 수가 자그만치 3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수 많은 제자들로 면면히 이어져 근래 고봉(高峰)스님과 그의 제자 우룡스님 및 고산스님으로 이어지고, 현재 청암사 승가대학 학장이신 의정 및 의진 스님이 1987년 3월 청암사 비구니 승가대학을 설립하였다.

 

               < 승가대학 건물 앞에 있는 "목련" >

 

                < 승가대학 학생들이 공양하는 "선원당" 건물 >

 

그 후 30년에 걸쳐 전 도량과 부속 건물을 보수 및Ÿ 신축하였고 극락전과 함께 하는 보광전 내에 목조로 되어진 사십이수(四十二手) 관음보살상을 새로 조성하여 모셨으며, 범종각 건물을 신축하는 등 후학 양성에 원대한 발원을 위하여 불사에 펼친다고 한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 속에 고찰(古刹)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전통 강원의 맥(脈)을 이어가고 있는 청암사는 대중 스님들이 부처님 경전 공부와 함께 수행의 향기를 쌓아가고 있는 사찰이라 하겠다.

본찰이 되는 청암사 경내를 관람하고 다시 극락교를 건너 사찰의 전면 방향으로 올라가면 인현왕후가 머물었다는 "극락전(極樂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극락전 건물은 정면 7칸에 측면 7칸의 규모에 2층 누대를 설치한 ㄱ자 형태의 복합 건축물이면서 겹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 청암사 앞 "극락전"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 >

 

정문이 되는 작은 문 입구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펫말로 먼 발취에서 사진 한장을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이곳에서 인현왕후가 3년 동안 머물었다는 어떠한 안내문 한장도 없으므로 청암사는 인현왕후와 관계를 전연 표현하지 않고 오직 흘려가는 역사(歷史)의 한 페이지로 남겨두고 있다.

 

             < 작은 문과 함께 하는 "극락전" 전경 >

 

숙종의 정비(正妃)가 되는 인현왕후가 서인으로 있을 때 청암사 극락전에서 특별 기도를 올린 인연으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불영산의 적송(赤松)산림은 국가 보호림으로 지정이 되어 궁(宮)에서 무기 등을 하사 하였고 조선시대 말기 까지 상궁(尙宮)들이 신앙생활을 하였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고종 9년(1905년) 주지 대운당스님이 잠결에 빨간 주머니를 얻는 꿈을 꾼 후 한양으로 올라가니 어느 보살 한분이 자신이 죽은 후 염불을 부탁하며 대시주를 하였다고 하는데, 대운당스님은 쇠락하고 있는 극락전을 중건하고 염불 만일회(萬日會)를 결성하면서 극락전에서 염불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염불당으로써 역할을 다했다고 한다.

 

              < "인현왕후" 가 머물었다는 극락전 >

 

극락전 옆에 있는 서쪽 방향으로 돌아서 가면 또 다른 요사채 건물과 함께 "보광전(普光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보광전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작은 규모의 법당이 되지만 마침 스님들의 예불을 올리는 시간이라서 내부에 모시고 있는 목조 사십이수 관음보살상의 관람이 불가능하게 한다.

 

         < 극락전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보광전" >

                   < 보광전 앞 왼편에 있는 "요사채" >


보광전 앞으로 내려오면 부도탑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으면 그 앞으로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만나는데, 도로 가장자리에는 청암사에 유명한 2개의 해우소 건물이 나란하게 자리하면서 하나는 옛날 재래식 변소가 되고 나머지 하나는 수세식 변소가 된다.

 

                     < 보광전 앞에 있는 "부도탑" 군락지 >

 

                   < 도로 가장자리 2개의 "해후소" >

 

이렇게 하여 청암사 경내를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관람을 끝내고 극락전 옆 계곡 건너편 "백련암(白蓮庵)" 이라고 새긴 입석이 서 있으므로 백련암도 함께 관람하여 보기로 하는데, 청암사는 수도암과 백련암 등 2개의 암자를 거닐고 있다고 한다.

 

                < "백련암" 을 가르키는 입석 >

 

오솔길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백련암으로 들어가는 대문이 자리하고 있어 열려있는 대문을 통과하면 오른편으로 본당 건물과 더불어 지장전(地藏殿) 건물이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대웅전 격이 되는 본당 건물은 정면 7칸에 측면 4칸이 되는 거대한 건물이라 하겠다.

 

                < 백련암으로 들어가는 "문" >

           < 백련암의 "본당" 이 되는 거대한 건물 >

               < 본당과 나란하게 하고 있는 "지장전" >

 

이 밖에 본당 건물과 지장전 건물 사이의 높은 축대 위로 칠성각(七星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본당 건물 앞에는 잘 가꾸어진 정원과 더불어 다수의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암자의 분위기는 사찰이라기 보다 일반적인 가정집 분위기가 물씬하게 풍긴다.

 

        < 암자의 제일 뒤편에 있는 "칠성각" >

 

               < 본당 앞 꽃과 함께 하고 있는 "요사채" 건물 >

 

오늘은 모처럼 만나는 초등학교 동문을 위하여 처음 대면하여 보는 청암사와 산내 암자가 되는 백련암과 수도암을 돌아보고 천천히 주차장으로 내려가 승용차를 운전하여 인접하게 있는 김천시 지례면으로 이동하여, 지례 흑돼지로 저녁식사를 대접하기로 한다.

지례면사무소로 들어가 다양한 식당이 자리하고 있는 중심지를 구경하다가 지례 흑돼지의 원조가 되는 "장영선 원조지례 삼거리불고기"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식사 하기에 다소 빠른 시간이 되지만 그래도 많은 손님들이 자리를 점유하고 있다.

 

                       < 지례면 중앙에 있는 "장영선 원조지례 삼거리불고기" 식당 >

 

한개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모처럼 지례 흑돼지의 참 맛을 의미하여 보는데, 나는 몇 번 먹어보았던 고기이지만 동문들은 지례 흑돼지가 그렇게도 유명한지도 몰랐다고 하면서 수도암에서 너무나 과식한 점심이지만 그래도 젖가락 운전이 빨라지게 만든다.

동문들과 즐거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동문 한명이 일어나 먼저 돈을 지불하므로 대구에 살고 있는 내가 계산하지 못하여 미안 함을 느끼고 있는데, 금일 하루 운전과 더불어 이렇게 역사가 숨겨 있는 사찰 및 좋은 음식 까지 소개하여 주는 것 자체로 충분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