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성고.(총동창 행사)

2018년 계성고등학교 총동창산우회 서울 및 대구 합동산행은 대전에 있는 '계룡산 갑사' 에서.

용암2000 2018. 10. 29. 19:48

2018년 10월 20일.(토요일)

 

만학단풍(萬壑丹楓)이 내리고 있는 청명한 가을 날씨 나의 모교가 되는 계성고등학교 총동창산우회에서 2018년 서울 및 대구 합동산행을 실시하기로 하는데, 금년에는 양쪽 지역에서 접근하기가 다소 수월한 대전지역에 있는 "계룡산 갑사(鷄龍山 甲寺)' 에서 개최하겠다는 연락이 도착한다.

아침 일찍 버스가 지나가는 대구 도시지하철 2호선와 3호선이 교차하는 신남역 1번 출구 앞에서 7시 20분에 버스가 도착한다고 하였지만, 출발한 버스가 중간에서 고장으로 다음 승차장이 되는 용산역 앞에서 버스가 기다리겠다는 변경의 연락이 도착되어 진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용산역으로 이동하여 기다림을 가지고 있으니 한시간이나 늦게 대치 버스가 도착하므로 다수의 인원이 이탈하고, 대구에서 산행에 동참하는 동문의 숫자는 약 50명이 되어진다.

대형 및 마이크로 버스 각 한대가 함께 출발하여 대전광역시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금일 우리 56회 동문도 몇 명이 돌아가므로 처음 참석을 약속한 인원 보다 다소 적은 7명이 동행하게 된다.

김천휴게소로 들어간 버스는 집행부에서 준비한 아침식사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 계속하여 북쪽으로 올라가 11시가 조금 넘어 계룡산 뒤편에 있는 갑사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먼저 도착하여 많은 기다림을 가진 70여 명의 서울동문들과 재회의 시간을 가진다.

 

< '갑사' 주차장에 집결한 동문 >

 

우리 56회 서울동문은 한명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반대로 대전에서 살고 있는 2명의 동문이 참석하므로 인하여, 총 9명이 반가운 재회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 간단하게 등정식 행사에 참석한다.

식순에 따라 국민의례와 함께 총동창부회장 인사와 더불어 지역별 산악회 회장의 인사가 이어지고 나서 산대장이 산행에 따른 간단한 산행 일정을 소개하는데, 오늘은 늦은 출발 시간으로 인하여 코스를 대폭적으로 단축하겠다고 한다.

 

< 나의 기수가 되는 '총동창부회장' 인사 >

 

< 산행 전 '기념사진' 한장 >

 

산행의 코스는 먼저 갑사를 통과하면서 갑사에서 동학사로 넘어가는 중간지점 3.2Km에 있는 '신흥암(新興庵)' 까지로 하겠지만, 다소 여력이 충만한 동문은 신흥암에서 1,.05Km 떨어진 '금잔디고개' 까지 왕복하는 코스를 첨가하는 것도 가능하겠다고 한다.

12시 부터 산행을 시작하여 오후 2시 30분 까지 이곳 갑사주차장에 도착하면, 금년 산행의 행사를 주관하는 서울 산우회에서 준비한 푸짐한 음식을 먹으면서 재회의 시간을 가지다가 오후 4시에 종결하겠다고 한다.

 

< 갑사주차장에서 바라보는 '계룡산' 전경 >

 

기수별로 삼삼오오 짝을 형성하면서 출발하는 동문은 주차장을 벗어나자 마자 이내 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하면 먼저 작은 야외공연장을 만나는데, 공연장에서는 몇 명의 음악인들이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다.

 

< 야외공연장에서 노래하는 '연주자' >

 

야외공연장 뒤편으로 기념품과 음식을 판매하는 상가들이 도열하고 있는 거리를 통과하면 이내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지만, 우리 기수는 경로의 우대로 인하여 무료 입장이 가능하여 진다.

 

 

< 산행길 가장자리에 물건을 판매하는 '상가' >

 

매표소를 지나면서 울창한 숲과 더불어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고 있는 오솔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일주문(一柱門) 및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연속적으로 만나는데, 이곳 사천왕문에는 다른 사찰과 비교하여 다소 큰 사천왕이 동서남북 4방향에서 내려보고 있어 다소 겸손함을 느끼게 만든다.

 

< 매표소를 지나면 만나는 '일주문' >

< 연속하여 만나는 '사천왕문' >

 

이곳 갑사는 노송과 느티나무 숲으로 우거진 계룡산 서북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써 공주에서 19km 떨어져 있고, 동학사에서 도보로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서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 라는 말에서 암시하여 주는듯 갑사의 가을 단풍은 더 없이 아름답다. 

 

<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는 '갑사구곡' >

 

사천왕문을 지나서면 조금 더 전진하여 가면 왼편으로 갑사의 경내로 들어가는 계단이 나타나면서 계단에 올라서면, 다소 넓은 마당과 더불어 전면에는 2층의 지장전(地藏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2층의 건물이 되는 '지장전' >

 

< 2층 지장전 내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

 

마당의 오른편 끝지점에 종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건물 내에는 보물 제478호가 되는 갑사 '동종(銅鐘)' 이 보관되어 있는데, 잠겨져 있는 문 사이로 내부를 들어보면 아담한 종 한기가 메달려 있다.

 

< 마당의 오른편 끝지점에 있는 '종각' 건물 >

 

이곳 동종은 1584년에 제작되어진 종으로 높이 131cm이며 입의 지름 91cm이고, 전체적인 형태는 어깨 부분에서 몸통 부분 까지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면서 몸통 부분 부터 하단 까지는 직선을 이루고 있다.

종의 윗 부분에 음통(音筒)이 없으며 사실적으로 조각된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한 채 용뉴를 이루고 있으면서, 어깨 위에는 입상(立狀)의 물결 무늬가 돌려졌고 그 아래 상대(上帶)에는 연꽃 무늬와 둥근 원의 내부에 새겨진 범자 31자가 차례로 돌려져 있다.

양각된 명문에는 종을 만들게 된 동기나 주조연대, 사용된 쇠의 무게, 시주자의 이름 등이 자세히 적혀 있어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이곳 동종은 신라와 고려의 기본적인 형태 및 양식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조선 초기의 동종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종이라 하겠다.

 

<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져 있는 '동종' >

 

 

동종이 있는 종각 건물 건너편으로 갑사 '공우탑(功牛塔)' 이 자리하고 있는데, 탑은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탑신의 1층에는 탑의 건립 내용이 새겨져 있다.

탑의 2층과 3층에는 탑명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으면서 탑의 건립은 탑신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서 갑사를 중창 할 때에 큰 공을 세운 소(牛)로 인하여 만들어 졌던 것으로 판단이 되어지는데, 명문 내용은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니 인도(人道)에 우연히 합치되었네. 세 번을 수고하고 수고했으니 그 공이 으뜸이라' 라고 기술하고 있다,

 

< 동종 건너편에 있는 '공우탑' >

 

 

경내를 구경하기 위하여 다시 입구로 돌아와서 몇 단의 돌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 마당에 이르는데, 마당의 좌우에는 요사체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높은 축대 위에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넓은 마당과 함께 하는 '대웅전' >

 

갑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산인 충남 공주시에 있는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써, 계룡갑사, 갑사, 갑사사, 계룡사라고도 불려지는데,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내려오고 있다.

백제 구이신왕 1년(420년)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3년(556년) 혜명대사(惠明大師)가 창건했다는 설이 내려오고 있고,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혜명대사가 중창했다는 설도 있다.

신라 문무왕 19년(679년)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건물 1,000여 칸을 더 짓고 절 이름을 계룡갑사에서 갑사로 바꾸어 화엄대학 지소로 삼았으며, 이때 부터 화엄십찰의 하나가 되었다.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모두 불타 버리고 효종 5년(1654년)에 사정 및 신휘 등이 관청의 도움을 받아 중수하였고,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다양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대웅전(大雄殿) 건물로 올라가서 내부를 잠시 돌아보는데, 높은 좌대 위로 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뒤편으로 후불 탱화가 그려져 있지만 일반적인 사찰의 그림이 되어진다.

 

< 대웅전 내에 모시고 있는 '삼존불' >

 

갑사에는 국보 1점과 보물 5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국보 제298호가 되는 '갑사 삼신불쾌불탱화' 와 보물 제1651호가 되는 '갑사 석가여래삼세불도' 및 보물 제582호로 지정이 되는 '월인석보판목' 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어 관람이 불가하여 아쉬움이 발생되어 진다.

대웅전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삼성각(三聖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다시 나아가면 요사채 건물과 함께 관음천불을 모시고 있는 관음전(觀音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삼성각' >

 

< 삼성각 오른편에 있는 '관음전' >

 

< 관음전 내에 모시고 있는 '관음천불' >

 

관음전을 벗어나면 사찰을 돌아서 올라오는 산행길과 만남이 일어나면서 이곳에서 2개의 산행길로 나누어지는데, 오른편의 길은 연천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면 직전의 길은 금잔디고개로 넘어가는 길이 되어진다.

 

< 관음전 옆에 있는 3거리 '등산로' 지도 >

 

오늘 우리 동문들이 산행을 할려고 하는 길은 금잔디고개 아래에 있는 신흥암 까지 걷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직진의 길로 조금 올라가면 작은 다리를 건너면서 우측 야산 기슭에 대성암(大聖庵)을 가르키는 입석을 만난다.

 

< 금잔디고개로 올라가는 '등산객' >

 

그래서 등산로를 벗어나서 잠시 대성암으로 들어가 보는데, 암자의 입구에는 해와 달을 손에 지고 있는 관세음보살이 서 있고 그 우측편으로 일반 가정집과 비슷하게 지어진 건물 내에 주불을 모시고 있다.

 

< '대성암' 을 가르키는 입석 >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성암' >

 

< 대성암 왼편에 있는 '관세음보살' >

 

더 오른편으로 나아가면 요사채 건물과 더불어 그 옆으로 탑을 비롯하여 다양한 석조물의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군락지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하여 크게 공을 세웠던 승병장이 되는 '영규대사' 의 공덕비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 대성암 오른편에 있는 '석조물' >

 

영규대사는 갑사에서 출가하여 서산대사 '휴정' 의 제자가 되어 항상 이 절에서 주석하고 있었는데,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그 해 여름에 왜구가 청주지방 까지 이르러 청주가 점거 당하자 이에 영규대사는 승려 700명을 엄격히 선발하여 승군을 일으켰으며 청주지방의 승려 300명도 참여한 1,000명의 승군을 리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승병을 일으킨 것은 영규대사가 처음으로 그 뒤 전국 곳곳에서 승병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금산 전투에서 사력을 다하여 싸우다가 몰살한 전투로 유명한 의병장이 되어진다.

 

< 대성암 오른편 구석자리에 있는 '영규대사' 공덕비 >

 

암자를 횡하게 돌아보고 나서 다시 계곡길 따라 산행을 계속하여 올라가면 계곡의 가장자리에는 작은 폭포와 함께 흘려내리는 물이 한기를 품고 있는데, 여름에는 정말 시원한 계곡이 되어짐을 자명하게 만든다.

 

<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폭포' >

 

무아지경으로 20분 정도 올라가면 또 다시 3거리가 나타나면서 계곡 방향으로 갑사9곡 중 제8곡이 되는 '용문폭포(龍門瀑浦) '가 100m 정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는 이정표를 보고, 나무테크의 길 따라 계곡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매우 아름다운 암석 사이로 흐르고 있는 폭포를 만난다.

 

< 높이 10m 정도가 되는 '용문폭포' >

 

폭포를 잠시 구경하고 나서 다시 원점이 되는 3거리로 나와서 산행길 앞에 서는데, 이곳에서 부터 산행길은 거의 직벽에 가까운 나무테크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어 무척 고난도의 길이 되어진다.

 

<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는 '나무테크 계단' >

 

마음 속으로 계단 숫자를 카운팅 하면서 한참을 올라가면 갑사에서 산 허리로 빙돌아서 올라오는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만나는데, 이곳 도로는 신흥암으로 올라가는 신도들에게 이동의 편리성을 부여하는 시멘트 포장길이 되어진다.

 

< 차량 도로와 만나는 3거리 '이정표' >

 

< 차량이 다니는 '시멘트' 포장길 >

 

포장길 따라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갑사9곡 중 제9곡이 되는 수정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신흥암(新興庵)' 에 도착이 되어지는데, 신흥암은 옛 건물과 함께 새로운 건물이 함께 하는 매우 큰 암자가 되어진다.

 

< '수정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신흥암 >

 

< 새롭게 건립하고 있는 '요사채' >

 

암자의 마당에 들어서면 좌우의 요사채 건물을 두고 있는 가운데 천진보궁(天眞寶宮)이 자리하고 있는데, 보궁의 건물 내에는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매우 작은 오백나한과 더불어 뒤편으로 큰 유리창문으로 되어있다.

 

< 좌우 요사채 건물을 거닐고 있는 '천진보궁' >

 

< 보궁 내에 모시고 있는 '오백나한' 과 큰 유리창문 >

 

유리창문의 뒤편 야산의 언덕 위에 '천진보탑(天眞寶塔)' 이 되는 거대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천진보탑은 인공으로 만든 탑이 아니고 탑의 모양을 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가 되어진다.

 

< 천진보궁 뒤편에 있는 '천진보탑' >

 

전설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후 인도의 '아소카' 왕이 사리탑에서 부처님 사리 8곡 4두를 발견하여 이를 세상에 나누어 줄 때, 사천왕 가운데 북방을 담당하는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을 계룡산에 보내어 천연 석탑 안에 사리를 넣었다고 한다.

이후 아도화상이 사리를 발견하고서 천진보탑이라고 불려졌다고 하는데, 천진보탑을 보기 위하여 한명의 동문과 함께 경내 뒤편에 있는 산신각(山神閣)을 통과하여 암릉의 길로 조금 올라가면 걷기가 편리한 나무테크 길이 만들어져 있다.

 

< 천진보탑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산신각' >

 

나무테크의 길을 걸어가면 멀리 계룡산의 능선이 되는 삼불봉과 함께 화려한 색으로 물들고 있는 단풍이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고, 발 아래에는 신흥암의 건물들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 삼불봉과 함께 물들고 있는 '단풍' >

 

< 발 아래에 머물고 있는 '신흥암' 전경 >

 

능선 가장자리로 나아가면 수령 500년이 넘어 보이는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와 함께 천신보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보탑 앞에 있는 기도처에서 여신도 한분이 기도와 함께 열심히 불공을 드리고 있다.

 

< 수령 500년 정도가 되는 '소나무' >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사리를 모시고 있는 적멸보궁(寂滅寶宮)에서는 인공의 탑을 만들어서 사리를 탑 아래에 모시거나 아니면 무덤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데, 이곳은 천연 바위 속에 모시고 있다고 하니 정말 경이스러운 장소가 되어진다.

 

< 석가모니 사리를 모시고 있는 '천진보탑' >

 

함께 걷고 있는 동문과 함께 지참하고 있는 물과 더불어 과일로 허기를 좀 달래고 있으니 금잔디고개에 도착한 동문들이 전화가 오는데, 오늘은 이곳에서 바로 하산하겠다고 전하면서 왔던 길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40분 정도 하산을 하면 다시 갑사에 도착 되어지면서 이제는 올라왔던 길과 반대가 되는 개울 건너편에 있는 대적전(大寂殿) 방향으로 들어가 보는데, 대적전은 메인 사찰이 되는 대웅전 건물과 떨어져 외롭게 자리하고 있다.

 

< 본찰과 떨어져 있는 '대적전' >

 

대적전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6호가 되어지면서 정면 3칸에 측면 3칸의 팔작지붕에 다포식(多包式) 건축물이 되어지는데, 건물 내부는 통칸으로 바닥에 널마루를 깔고 내고주(內高柱)를 세우고 고주 사이에는 후불벽(後佛壁) 및 불단(佛壇)을 설치하였으며 불단 위에는 아미타불와 관음보살 및 대세지보살을 안치하고 있다.

 

< 대적전 내에 모시고 있는 '삼존불' >

 

대적전 앞 마당에는 승탑(僧塔)이 자리하고 있는데, 승탑은 보물 제257호로 지정이 되어지면서 높이가 205cm가 되고 원래 갑사 뒤쪽의 계룡산에 있던 것을 1917년 현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8각의 높은 지대석 위에 3층으로 된 하대석과 탑신 및 옥개가 있는 8각 원당형 구조가 되고, 하대석의 모서리에는 피어나는 연꽃이 새겨져 있고 각 면에는 1구씩의 사자를 조각하면서 환조에 가까운 입체감을 주므로 매우 아름다운 탑이 되어진다.

 

< 대적암 앞 마당에 있는 '승탑' >

 

< 승탑과 함께 하는 고목의 '배롱나무' >

 

이곳 대적전에서 바로 내려가는 길로 조금 하산하면 거대한 높이를 가지고 있는 '철당간(鐵幢竿)' 을 만나는데, 이곳 철당간도 보물 제256호로 지정이 되어지면서 철당간 높이가 15m에 지주 높이 3m가 되어진다.

기단은 단층으로 길쭉한 돌 2장을 합쳐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 접착 부위에 돌을 서로 연결하는 쇠못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러한 장식수법은 통일신라 시대의 특징이라 하겠다.

당간은 지름 50cm의 철통 24개를 연결한 것으로 원래는 28개였지만 고종 30년(1893년) 4개의 철통이 부러졌다고 하는데, 철제 당간에서 기단 까지 모두 갖춘 귀중한 자료가 되어진다고 한다.

 

< 국내 유일한 '철당간' >

 

당간에서 조금더 내려오면 오솔길은 개울 옆으로 이어지므로 맑은 물과 함께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올라갈 때 지나갔었던 길과 만남이 일어나고 바로 일주문을 통과하여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주차장 제일 끝지점에 있는 대형버스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벌써 산행을 끝낸 동문들은 짝을 형성하면서 만찬식을 거행하고 있는데, 우리 56회 기수 몇 명도 자리를 마련하면서 음주를 즐기고 있어 자리에 합승하여 본다.

서울 및 대구동문의 집행부에서 준비한 많은 음식으로 주린배를 가득 채우고 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데, 우리 56회에서 서울동문들이 참석하지 않아 다소 아쉬움이 일어나는 산행이 되어진다.

 

< 우리 기수 56회 '동문' 의 회식 >

 

 

충분한 여가 시간을 가지고 나서 오후 4시 경 서울동문들과 이별이 되는 해단식을 거행하기로 하는데, 오늘도 집행부에서 푸짐한 선물을 준비하므로 무거운 보따리를 수여받는 시간을 가진다.

올해는 서울동문들이 주관하는 행사가 되므로 대구동문들이 먼저 버스에 올라 서울동문들이 도열하면서 손을 흔들어 주는 작별의 인사를 받으면서, 갑사주차장을 떠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