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군 문화와 산행.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있는 금성산과 비봉산 자락에 있는 '수정사 및 탑리5층석탑' 의 관람.(2)

용암2000 2019. 3. 28. 00:51
2019년 3월 25일. (월요일)
 
3) 수정사를 돌아보면서.
산수유 축제장을 떠난 일행은 점심식사 시간을 갖기 위하여 의성군 금성면사무소 인근에 있는 수정골 한우 불고기 식당을 찾아가기로 하는데, 산수유 축제장을 떠난 일행은 오전에 지나온 가음면사무로 통과하여 금성면으로 넘어가면 이내 우측편으로 금성산의 전면이 보인다.
금성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산운생태공원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생태공원 내에 있는 폐교 건물에는 이곳 금성산 주변에서 살았던 공룡의 흔적을 수집한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지만, 월요일에는 박물관이 휴관하므로 문이 잠겨져 있다.
그러나 생태공원에서 더 내부로 들어가면 왼편으로 금성산과 오른편에는 비봉산 까지 연결하는 긴 능선이 자리하고 있는데, 능선 아래 오목한 가운데 지점에 수정사(水淨寺)가 자리하고 있어 잠시 관람하여 보기 위하여 계속하여 운전하여 골짜기로 들어간다.
나는 2012년 9월 1일 산악회에서 추진하는 금성산 및 비봉산 종주 산행에 참석하여 능선을 종주하면서 눈 아래로 분화구의 중심지 부분에 있는 사찰이 매우 좋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지나간 경험이 있었는데, 언젠가 사찰을 한번 방문하여야 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진적이 있었던 사찰이다.
 
< 금성산과 비봉산 능선에서 내려보면 분화구의 중심지가 되는 '수정사' 전경 : 2012년 9월 1일 촬영 >


오늘은 특별한 생각도 없이 금성산 안으로 들어가다가 옛날 산행한 경험이 생각나게 만드는데, 그 때 무리하게 양쪽 산의 능선을 종주하다가 무릎 관절에 이상이 발생하여 이후 부터 큰 산행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졌던 산이라 나에게는 악마와 같은 원수의 산이 되어진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계곡 속으로 한참을 들어가면 아담한 사찰은 만나면서 사찰 앞에 주차장이 있지만, 금일은 주말이 아니므로 경내까지 운전하여 경내에 있는 마당에 주차하여 본다.
 
<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금성산' 전경 : 2012년 9월 1일 촬영 >
 
수정사의 터는 우측으로 해발 671m '비봉산(飛鳳山)' 과 좌측으로 해발 530m '금성산(金城山)' 이 상호 능선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화산이 분출한 후 굳어진 기암괴석의 화산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분출지점 중앙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 '비봉산' 정상석 ; 2012년 9월 1일 촬영 >

 
< '금성산' 정상석 : 2012년 9월 1일 촬영 >
 
수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경북 의성군 고운사(孤雲寺)의 말사로써 신라 신문왕 때 의상(義湘) 대사가 창건하였고,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성종 12년(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수량사(水量寺)라고 나와 있으나, 신경준(申景濬)이 편찬한 '가람고(伽藍考)' 에서 지금과 같이 수정사(水淨寺)이라고 쓰여 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당시 유정(惟政)스님이 머물면서 금성산(金城山) 언저리에 진을 치고 왜적을 격퇴하면서 사찰의 규모가 매우 컸으나 헌종 1년(1835년) 불로 대광전만 남기고 모두 탔다.
그 뒤 전홍(展鴻)스님이 옛터 위쪽 지금의 자리에 사찰을 중창하였는데, 1965년 이래 6년 동안 월산(月山)스님이 중수하였으며 요사채 및 월영루, 격외선원, 사명영당, 영지, 축대 등을 세웠다.
1973년 정부의 보조금으로 성견(性見)스님이 대광전을 중수하였으며 향각(香閣)을 중건하였고, 이어 1993년 주지 총혜(聰惠)스님이 명부전 및 범종각을 새로 짓고 산신각과 설선당(說禪堂)을 수리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마당의 앞 우측으로는 새롭게 건축한 거대한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의 뒤편으로는 범종각 건물이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사이로 비봉산으로 올라가는 산행길의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 마당의 오른편에 있는 '요사채' 건물 >
 
마당에서 본당으로 들어가면 먼저 왼편으로 정자와 함께 우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솟아나는 우물은 골짜기로 부터 울창한 송림 사이에서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흘러 내린다고 하여 물 '수(水)' 와 깨끗할 '정(淨)' 자를 써서 수정사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 경내의 가장자리에 있는 '정자' >
 
< 정자 오른편에 있는 '우물' >
 
<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샘' >
 
이 우물 앞으로 범종각 건물과 동일 축대 위로 '명부전(冥府殿)' 건물을 중심으로 하는 ㄷ자 형태의 건물과 본당이 되는 '대광전(大光殿)' 건물을 중심으로 하는 ㅁ자 형태의 건물이 연달아 만들어져 있어, 매우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사찰이라 하겠다.
 
< 경내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ㄷ자 구조의 '명부전' 건물 >
 
명부전 앞에 만들어져 있는 작은 마당의 좌우측에는 수정사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왼편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광전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명부전 앞 마당의 오른편에 있는 '수정사' 건물 >
 
< 오른편 수정사 건물 측면 벽에 붙어있는 '수정사' 내력 >
 
< 명부전 앞 마당 왼편에 있는 '수정사' 건물 >
 
대광전 앞에 있는 작은 마당에는 ㅁ자 형태로 전후좌우로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오른편의 건물은 '격외선원(格外禪院)'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으면 왼편에는 사명영각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명부전 좌측편 ㅁ자의 중앙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광전' >
 
< 대광전 앞 마당 오른편에 있는 '격외선원' >
 
대광전 건물과 마주보는 전면에는 새롭게 건축한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마당이 동서남북으로 완전하게 밀폐가 되는 형태가 되어 매우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대광전 건물과 마주보고 있는 '요사채' 건물 >
 
대광전 건물은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하면서 축대의 중앙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의 돌계단은 자연석으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운치가 있으며 그 자연석 곳곳에 아름다운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돌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원이 되어진다.
돌계단을 이용하여 높게 올라가면 축대 위로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팔작지붕 형태를 하고 있는 대광전(大光殿) 건물을 만나는데, 건물의 내부 중앙에 석가모니부처를 비롯하여 좌우로 협시불을 모시고 있다.
 
< 대광전 내부에 석가모니 부처를 모시고 있는 '불단' 전경 >
 
마당의 좌측에 있는 건물에는 사명영각(泗溟影閣)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데, 경내에는 사명당 유정스님를 비롯하여 역대 고승들의 진영을 모시고 있어 감히 문을 열고 내부를 들어보는 것을 망서리게 만든다.
 
< 대광전 앞 마당 왼편에 있는 '사명영각' 건물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광전 왼편 옆으로 정면 1칸에 측면 2칸 짜리 산령각(山靈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에도 또 다른 선방이 되는 염화실 건물 등이 난립하게 자리하고 있어 다소 복잡한 구조를 가진 사찰이 되어진다.
 
< 대광전 건물 왼편에 있는 '산령각' >
 
< 산령각 옆에 있는 '염화실' >
 
시간이 너무나 경과하여 오후 2시가 넘어가므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과 같이 빠르게 경내를 벗어나기로 하는데, 금성면사무소 방향으로 들어가서 한우 식당을 찾아가기로 한다.


4. 매우 늦은 점심식사.
금성면 3거리로 나와서 3거리 측면에 긴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의 우측 마당 끝지점에 한마리의 황소 모형과 함께 높은 입간판이 서 있으면서 입간판에 '수정골 맑은 한우' 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 황소 모형과 함께 하고 있는 '수정골 맑은 한우' 입간판 >


이 건물의 우측에는 부위별 소고기를 판매하는 정육점이 자리하고 있고 왼편으로 매우 큰 식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식당에는 정육점에서 구입한 고기를 요리하여 주는 공생관계의 식당이라 하겠다.
 
< 오른편의 '정육점' 과 왼편의 '식당' 으로 구성하고 있는 건물 > 


일행은 소고기를 구입하지 않고 일단 식당으로 들어가 보는데, 종업원이 소고기를 구입하여 오던지 아니면 식당에서 직접 요리가 가능한 소고기 전골로 식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추천하여 준다.
 
< '소고기 전골' 과 함께 한잔의 막걸리 > 


그래서 실업자 주머니 사정으로 인하여 소고기 전골요리를 먹기로 하는데, 전골요리에서도 풍족한 소고기가 듬북 들어있어 한잔의 막걸리와 함께 맛 있는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다.


5. 탑리5층석탑 구경.
충분하게 식사를 끝내고 나서 금성면에서 의성읍 방향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조금 돌아서 가면 옛 조문국(召文國)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조문국 박물관 및 고분군' 을 찾아갔지만, 월요일은 휴관이라 관람이 불가능하여 진다.
 
< 월요일 휴관을 하고 있는 '조문국 박물관 및 고분군' 조감도 >
 
< 조문국 '고분군' 전경 >
 

그래서 이곳에는 5월 중순 경 고분군 군락지 중앙에 심겨져 있는 작약꽃 축제를 할 때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 점심식사를 하였던 금성면사무 방향으로 들어가 금성면사무소 중앙에 있으면서 옛날 한번 방문하였던 '탑리5층석탑' 을 재차 방문하여 보기로 한다.
문제는 탑리5층석탑이 면사무소의 어느 구석에 있지만 들어가는 이정표가 없어 면사무소 구석구석을 몇 바퀴나 뱅뱅 돌면서 고생을 한 후에야 비로써 입구를 찾아 내부로 들어가니 옛날과 다르게 탑의 바운다리 안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 탑리5층석탑은 국보 제77호로 지정이 되면서 경주에 있는 분황사 모전석탑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석탑이지만, 석탑 주변으로 어떠한 건축물도 없이 오직 하나의 탑만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다.
 
<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국보 제77호 '탑리5층석탑' > 


이곳의 탑은 신라 석탑의 초기형식을 보이는 석탑으로 초층 옥신(初層 屋身)은 목조건물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 옥개석은 전탑(塼塔)을 모방한 특이한 양식을 지니고 있다.
총 높이가 9.65m로서 단층기단(短層基壇) 위에 섰는데, 기단은 모두 별석(別石)으로 된 지대석(址臺石), 우주(隅柱), 탱주, 중석(中石)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 기둥과 초층 옥신의 구조는 아래는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상촉하관(上促下寬)의 엔터시스를 가지고 있어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에서와 같이 목조건물을 모방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목탑과 전탑 형식을 혼합하면서 전체적으로 전탑적인 외관을 갖췄고 단층이기는 하나 기단의 형식, 옥신, 옥개석의 형식 및 기단 갑석상면(基壇 甲石上面)의 괴임 등이 이른바 신라 석탑 형식의 방향을 제시하여 모든 신라 석탑의 출발점이 되는 시원형식(始源形式)을 가지고 있다.
각 부분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응용하는 한편 곳곳에서 전탑의 조성기법을 보여주는 2중의 작품인데,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국보 제30호가 되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 '탑리5층석탑' 을 홍보하고 있는 안내문 >
 
탑을 세부적으로 구경하기 위하여 축대에 오르면 1층의 지붕 위로 5층 까지의 탑식과 지붕이 비래적으로 형성하여 있고 탑신의 제일 상부에는 다소 넓은 돌이 놓여있지만, 탑신의 곳곳에 보수용 석재물을 교체하여 다소 빛을 발하는 탑이 되어진다.
탑의 오른편으로 이동하면 넓은 잔디 광장과 함께 한쪽 구석에 탑을 보수하면서 탑에서 교체한 돌의 자리를 표시하고 있는 탑의 그림과 교체한 돌을 소중하게 진열하고 있어, 국보급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게하여 준다.
 
< 잔디 광장 가장자리 석탑에서 교체한 '석조물' 전시품 >
 
< 교체한 석조물의 위치별 '번호 도면' >


이렇게 하여 의성군 금성면 주변에 있는 유적지를 잠시 돌아보고 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관광지를 관람할 수 있는 여분의 시간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한번에 여러 곳으로 다니는 것은 무리가 따르므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아침에 출발한 지하철 2호선 종점 영남대역으로 가기 위해서 다시 국도로 내려가기로 하는데, 의성에서 영천을 내려가는 국도의 중간지점 쯤 있는 신령면사무소 방향으로 들어가 신령면을 통과하면서 하양 방향으로 바로 가는 길을 선택하기로 한다.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