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아내와 함께 7박8일 동안 '제주도' 의 구석구석에 산재하고 있는 관광지를 돌아보면서.(9)

용암2000 2019. 12. 9. 18:52

2019년 11월 21-28일.(7박8일)

 

6. 여섯째날 : 11월 26일.(화요일 오전)

 

1) 만장굴의 재방문.

금일부터 새롭게 합류한 손녀를 위하여 여행의 계획을 다시 수립하게 하는데, 가능한 학생의 본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학업에 도움이 되어지는 방향의 관광지를 선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로 한다.

손녀가 제일 먼저 선정한 여행지로 교과서에서 자주 응급하고 있는 만장굴을 선택하는데, 만장굴은 여행의 셋째날(23일)에 방문하였지만 숙소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만장굴이 자리하므로 인하여 다시 방문하기로 한다.

만장굴 입구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셋째날 체험한 방법과 동일하게 홍보관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만장굴 유래를 돌아보고 나서, 만장굴로 들어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중요 부분을 관찰하면서 제일 안쪽에 있는 '용암석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본다.

 

< 다시 찾아간 만장굴의 '용암석주' >

 

< 용암석주를 배경으로 '손녀' 와 함께 >

 

2) 섭지코지를 찾아서.

다음의 여행지로 성산일출봉 앞에 있는 섭지코지를 방문하기로 하는데, 우리부부는 섭지코지를 많이 방문한 곳이고 제일 최근에 섭지코지를 방문한 날짜는 2017년 4월 27일 대학교 동문 6명과 함께 제주도를 여행할 때 돌아본 곳이다.

섭지코지는 숙소가 있는 성산일출봉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 몇번이나 돌아보았던 곳이라 네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해안가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이곳의 주차장에는 주차비를 수령하기 위하여 입구에 있는 자동인식기를 통과하면서 주차장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 주차장 가장자리에 있는 '거북바위' >

 

오늘 제주도의 날씨는 다소 흐린 날씨로 강풍과 함께 높은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데, 해안가로 밀려오는 파도를 배경으로 몇장의 사진을 찍으면서 등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로 한다.

 

< 거센 '파도' 가 밀려오는 해변 >

 

이곳 섭지코지는 제주도의 동쪽 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관광지로 제주 방언으로 '좁은땅' 이라는 뜻을 가진 '섭지' 와 '곶' 이라는 뜻의 '코지' 가 합하여 '섭지코지' 이라고 하는데, 해안선 따라 만들어져 있는 오솔길에는 심한 바람이 불어도 많은 관광객이 움직이고 있다.

 

< 강풍으로 밀려오는 '파도' 를 구경하면서 >

 

< 강풍에도 많은 '관광객' 이 걷고 있는 해안선 길 >

 

이곳에서 걷고 있는 관광객의 반 정도는 한국인으로 구성하고 있지만 나머지 반 정도는 외국인의 관광객이 되어지는데, 그 중에서 몇명은 일본어를 구사하고 있어 지금 한일간의 불신 속에서 제주도를 찾아주므로 인하여 무언으로 감사를 표현하여 본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해안선 따라 걸어가면 먼저 영화 '올인' 의 촬영 장소가 되어지는 성당의 건물이 나타나는데, 문제는 현재 이 성당의 건물은 다른 모습으로 개조하여 보기가 많이 흉측하게 만들고 있다.

 

< 영화 '올인' 의 배경이 되는 성당 >

 

< 흉측하게 개조한 '성당' 외형 >

 

성당의 뒤편에 있는 능선으로 올라서면 조선시대에 봉화를 올렸다는 협자 '연대(煙臺)' 가 자리하고 있고, 연대 앞에 있는 언덕 위로 하얀색의 등대(燈臺)가 자리하고 있다.

 

< 성당의 뒤편 능선 위에 있는 '연대' >

 

< 연대 앞 언덕 위에 있는 '등대' >

 

또한 연대 앞 바다에는 갈매기의 배설물로 인하여 머리 부분에 흰색으로 변색을 하고 있는 촛대 모양의 바위가 우뚝 솟아있는데,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곳 촛대바위는 선녀와 용왕신의 아들 사이에 못다 이룬 사랑의 전설이 담긴 선돌바위가 되어지는데, 옛날 섭지코지는 선녀들이 목욕을 하던 곳으로 선녀를 한번 본 용왕신의 막내 아들은 용왕에게 선녀와 혼인하고 싶다는 간청을 드렸다고 한다.

그래서 용왕은 아들에게 100일간 기도를 드리면 선녀와 혼인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하는데, 100일째 되던 날 갑자기 바람이 거세어져 선녀들이 하강을 하지 못 함으로 인하여 혼인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용왕이 이르기를 너의 정성이 부족하여 하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구나 하면서 달래어 보지만, 이에 슬퍼하는 막내는 이곳 섭지코지에서 선채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는 '촛대바위' >

 

이곳 촛대바위 뒤편으로 하얀색 등대는 다소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언덕으로 연결하는 계단을 이용하여 등대로 올라가 주변을 돌아보는데, 등대의 뒤편으로는 바다로 돌출하고 있는 성산일출봉의 화산석 바위들이 우뚝 솟아있고 그 뒤편으로 '우도(牛島)' 라는 섬의 끝머리가 조금 보이고 있다.

 

<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등대' >

 

< 등대 주변에서 바라보는 '광치기 해변' >

 

< 등대 주변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과 우도' >

 

< 눈 앞에 있으면서 일본인 안도 타다오의 '지니어스 로사이' 건축물 >

 

< 등대 주변에서 바라보는 '성당' 방향 >

 

등대를 한바퀴 돌아가면서 해안선을 구경하다가 왔던 길로 돌아가 주차장에 주차하고 있는 승용차를 몰고 다음 관광지로 떠나기로 하는데, 그 사이 주차비가 많이 올라갔다.  

 

3) 혼인지의 방문.

섭지코지리를 떠난 일행은 다시 인접하게 있는 '혼인지(婚姻池)' 로 들어가 보기로 하는데, 이곳 혼인지는 2010년 10월 13일 및 2015년 4월 27일에 대학교 동문과 함께 방문하였던 관광지가 되어진다. 

혼인지는 제주시가지에 있는 삼성혈(三姓穴)에서 태어나 탐라의 시조가 된 고(高)씨, 부(夫)씨, 양(梁)씨의 삼신인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 온 함(函) 속에서 나온 벽랑국(碧浪國) 세 공주를 맞이하여 각각 배필을 삼으면서 공주와 혼인하여 첫 신혼방을 꾸민 장소이다.

삼신인(三神人)은 벽랑국 공주들이 가지고 왔던 함 속에서 나온 송아지 및 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고 이로 부터 농경생활이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 세 공주와 함께 함이 떠밀려 왔던 해안선에는 '황루알' 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제주도의 남쪽 해안에 삼신인이 바닷가에서 처음 디딘 발자욱이 암반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 도로 건너편에 있는 관리사무소를 통과하여 혼인지 연못으로 들어가 구경을 하면서 연못의 뒤편으로 들어가는데, 연뭇 속에는 다양한 수생지 풀이 죽어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다.

 

< '혼인지' 를 표현하고 있는 조감도 >

 

< '혼인지' 를 나타내고 있는 입석 >

 

< 연못과 연못 사이로 걷는 '나무테크' 길 >

 

< 공주의 도착을 기념하는 벽랑국 '삼공주추달비' >

 

< 3명의 공주들이 목욕을 한 '혼인지' 전경 >

 

연못을 한바퀴 돌고 나서 혼인지의 중앙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삼신인이 신방을 꾸몄다는 동굴을 구경하여 보는데, 이곳 동굴의 내부에는 삼신인과 벽랑국 공주와 합방하였다고 하는 신방굴이 자리하고 있다.

다소 좁은 통로를 통하여 신방굴로 내려가면 동굴 내에는 3곳의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는데, 내부 각각의 공간에서 신혼 방으로 꾸몄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라고 하겠다.

 

< '신방굴' 로 들어가는 입구 >

 

< '신방굴' 에서 혼인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 >

 

동굴을 구경하고 나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통혼례를 치루는 넓은 마당과 더불어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건물을 만나는데, 입구의 왼편에 있는 건물은 하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 건물이고 마당의 중앙에 있는 건물은 전통혼례식을 거행하는 건물이라고 한다.

 

< '전통결혼식' 을 거행하는 건물 >

 

< 하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 >

 

간단하게 혼인지 주변과 더불어 전통혼례장을 관람하고 나서, 천천히 걸어가면서 입구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다음의 관광지로 떠나기로 한다.

    

4)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돌아보면서.

혼인지에서 다소 가까운 거리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을 찾아가기로 하는데, 이곳 갤러리도 2013년 3월 21일 및 2018년 11월 8일 대학교 동문 3명과 함께 방문한 곳이 되어진다.

갤러리 앞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승용차를 주차하고 나서 정문을 통하여 내부로 들어가는데, 김영갑 갤러리는 폐교가 되어진 상달분교를 인수하므로 넓은 운동장에는 정원을 잘 가꾸어져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여 주는 겔러리이다.

 

<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으로 들어가는 정문 >

 

< 방문을 환영하는 '아가씨' >

 

< '갤러리' 로 들어가는 길 >

 

< 넓은 '운동장' 에 조성하고 있는 정원 >

 

대충 운동장을 돌아보고 나서 교실을 개조하여 만든 갤러리 전시장으로 들어가는데, 전시장 입구에서 성인의 입장료가 4.500원 이지만 경로는 1.500원을 징수하고 학생은 3.000원을 징수하고 있다.

 

< 학교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갤러리' >

 

먼저 영상실로 들어가 김영갑씨의 일대기를 조명하여 보는데, 김영갑은 1957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면서 서울에 있는 한영공고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조금 하다가 제주도의 매력에 빠져 홀로 제주도로 내려와 오직 카메라에 목숨을 걸고 살아간 사람이다.

'두모악' 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기도 하므로 갤러리 이름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으로 작명하였고, 이곳 두모악에서는 김영갑씨가 20여 년간 오직 제주도를 사진에 담아온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김영갑' 씨가 사용한 유품 >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1982년에서 2005년까지 루게릭 병으로 사망하기 까지 제주도 사진을 찍어온 작가 김영갑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폐교를 개조하여 2002년 개관하였다고 한다.

내부 전시실에는 '두모악관' 과 '하날오름관' 으로 꾸며져 있는데, 양쪽 전시실에는 제주도의 오름과 중산간, 마라도, 해녀 등 지금은 사라진 제주도의 모습과 쉽게 드러나지 않는 제주의 속살을 감상할 수 있다.

 

< '두모악관' 의 전경 >

 

< 두모악관에 전시하고 있는 '사진' >

 

< 벽면 따라 전시하고 있는 '사진' >

 

<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억새' >

 

< '하늘오름관' 의 전경 >

 

< 하늘오름관에 전시하고 있는 '사진' >

 

< 가을 빛 속에 머물고 있는 '용눈이오름' >

 

< 눈에 쌓여있는 '용눈이오름' >

 

< '먹구름' 속에 머물고 있는 중산간 >

김영갑은 48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생(生)을 마감하지만, 그의 사진에 대한 평가는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제주도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한 사진작가가 되어진다.

특히 그가 제일 많이 찾았던 '용눈이오름' 에 대한 사진은 수천장이 넘는데, 최후에는 용눈이오름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까지 촬영이 가능한 사진작가가 되어지면서 그의 집념은 누구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예술가이다.

갤러리의 뒤편으로 들어가면 작은 건물을 만나면서 이 작은 건물을 개조하여 무인 카페로 운영하고 있는데, 내부로 들어가 커피는 마시지 않고 구경만 하고 밖으로 나온다.

 

< 갤러리 뒤편에 있는 무인 '카페' >

 

이곳 폐교를 작업실로 삼았던 김영갑 작가는 정원과 야외전시장을 손수 가꾸었지만 최후에는 병으로 사망하므로 인하여, 그의 시신은 자신이 일구어 놓은 정원에 뿌려져 있다고 한다.

 

< 화산석과 함께 하는 '고목' >

 

< 운동장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 '정원' >

 

< 운동장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사진 작가' 의 석상 >

 

김영갑이라는 한 사진 작가의 손때가 묻혀있는 정원을 배회하는데, 곳곳에 심겨져 있는 꽃과 나무 사이로 거닐어 보면서 한 작가의 삶을 회상하게 만들어 보는 계기를 가진다. -여섯째날 오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