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군 문화와 산행.

경북 의성군 금성면 일대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사적 제555호 '고분군' 을 탐방하면서.(3)

용암2000 2021. 8. 18. 10:07

 

2021년 8월 10일.(화요일)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있는 의성조문국박물관 및 의성민속유물전시관에서 관람을 끝낸 우리부부는 차량을 이용하여 금성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의성 금성면 고분군(義城 金城面 古墳群)' 를 돌아보기로 하는데, 조문국박물관 건너편애 있는 고분군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의성 금성면 고분군은 많은 차랑들이 움직이고 있는 28번 국도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국도변에 '조문국사적지(召文國史蹟地)' 이라는 거대한 입석이 서 있어 지나가는 차량에서도 여기가 유명한 사적지이라는 것을 알게 만든다.

 

< 주차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조문국사적지' 입석 >

 

주차장 가장자리에는 휴게소와 더불어 방문자 센터, 화장실 및 고분군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판이 함께 하고 있어 안내판에 기술하고 있는 내용을 정독하여 보는데, 이곳 의성 금성면 고분군은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원에 소재하고 있는 374기의 고분이 확인되었고 한다.

 

< 사적 제555호 '의성 금성면 고분군' 안내판 >

 

이곳에서 확인되어진 고분은 5~6세기 삼국시대 의성지역을 포함한 경북 북부지역의 역사와 문화 및 신라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유적지(遺跡地)로 평가하고 있다.

1960년 의성 탑리리 고분군이 발굴된 이래로 17차례의 매장 문화재 조사와 더불어 9번의 학술조사를 통해 이곳에서는 신라의 묘제(墓制)가 되는 돌무지덧널무덤을 독자적으로 수용한 점과 함께 경주와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관(棺)과 귀걸이, 허리띠, 고리자루칼과 같은 착장형 유물이 다양으로 발굴이 되었다.

출토 유물의 수량과 우수한 품질의 유물을 근거로 고분의 형성 시점을 추정하여 보면 삼국시대 중에서도 중앙집권 국가가 형성되기 전에 초기 국가를 이루고 있던 국읍(國邑) 시기로 보이고 있는데, 무덤 주인공들은 이 국읍의 지배계층 사람(人)인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고분군에서는 의성지역의 독특한 토기형식이 되는 ‘의성양식 토기’ 가 출토 되었는데, 이를 근거로 의성양식 토기들이 당시 꾸준히 생산이 되면서 지속적으로 유통되었던 사실도 확인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고분군이 신라의 수도가 되는 경주지역과 경북 북부지역을 연결하는 교통 중심지에 자리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의성이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임을 짐작이 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고분군의 위치와 출토 유물들로 미루어 볼 때, 2020년 4월 1일 사적 제555호로 지정된 의성지역은 신라의 발달 과정에서 단순한 북방의 거점지역이 아닌 정치, 경제, 문화, 군사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부부는 주차장 앞으로 광활하게 펼쳐지고 있는 고분 사이로 한바퀴 돌아보기로 하는데, 출발을 하려고 하는 순간 마침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망서리고 있으니까 지방지치단체에서 탐방로 입구에 우산을 비치하고 있어 매우 유용한 우산이 된다.

 

< 주차장 가장자리에서 내려보는 '고분군' 전경 >

 

< '탐방로' 의 동선을 가르키는 이정표 >

 

아름다운 우산을 골라서 쓰고 탐방로 따라 고분 군락지 사이로 걸어가면 고분에서는 너무나 잘 조성되어 있는 잔디가 비를 머금으면서 청초로움을 더하고 있고, 더불어 곳곳에 이곳 의성군이 자랑하는 작약꽃 단지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 잔디를 잘 관리하고 있는 '고분' >

 

<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작약꽃' 단지 > 

 

의성군에서는 매년 5월에 작약꽃 축제를 개최하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로 인하여 작년 부터 축제를 취소하고 있으면서 더불어 작약꽃이 활짝 피는 계절이 훨씬 지나갔으므로 앙상한 꽃대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어 다소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다.

 

< '의성작약' 을 홍보하는 안내문 >

 

< 꽃이 떨어진 '작약' 꽃대 >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고분은 지름이 15~19m에서 높이가 3~4m의 대형분(大型墳)와 지름 10~15m에 높이가 2~4m의 중형분(中型墳) 및 지름 10m 미만의 소형분(小型墳)이 고루 밀집되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고분은 원형 봉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960년에 국립중앙박물관 및 1965년 경희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및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조사 결과 성토의 모양은 봉구를 중심으로 수평단축 상태로 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봉구를 조성하는데 사용된 흙은 순수한 점토로서 그 흙의 량(量) 또한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사용한 흙의 대부분이 이 지방에서 출토되는 흙과 색깔이 달라 다른 지역에서 운반하여 왔을 것으로 짐작되어 진다.

이것으로 이 고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동력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을 하는데, 그래서 고분군은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매우 큰 통치자(統治者)에 의해 조성된 것 임을 알게 만든다.

고분군 사이로 만들어져 있는 탐방로 따라 한참을 걸어서 내려가면 많은 고분군 중에서 유일하게 왕의 릉(陵)으로 밝혀진 '경덕왕릉(景德王陵)' 에 도착이 되는데, 릉의 앞에는 좌판과 더불어 좌우에 석조물이 함께 하고 있다.

 

< 고분군의 중간지점에 있는 '경덕왕릉' >

 

< '경덕왕릉'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경덕왕릉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대리리 2호 고분을 발굴 조사한 후 무덤을 복원하면서 만든 '조문국고분전시관(召文國古墳展示館)' 이 만들어져 있는데, 고분의 내부로 들어가니 고분의 입구에 여자 안내원 한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경덕왕릉 인접하게 자리하고 있는 '조문국고분전시관' >

 

< 대리리 2호 고분에 만든 '조문국고분전시관' >

 

< '대리리 2호 고분' 이 있는 위치 >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고분전시관 내에서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씨에 여자 혼자 고분 내부를 지키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대단하게 간이 큰 여자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안내원이 가르키는 관람의 동선(動線) 방향으로 들어가 구경을 하기 시작한다.

고분의 중앙에는 A와 B의 2곳에서 주인공 시신을 모시고 있는 덧널과 주변으로 순장자의 덧널로 구성하고 있고, 덧널의 가장자리 따라 이곳 금성산의 고분 분포도, 고분의 형성과정, 순장사례, 순장문화의 비밀, 경덕왕릉의 유령 등 설명문을 비롯하여 대리리 2호 고분에서 출토되어진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 고분의 중앙 '주인공 및 순장자' 덧널 >

 

< 덧널 내부에 안치하고 있는 '시신' >

 

< '덧널' 가장자리 따라 만든 통로 >

 

< 통로 내부에 부착허고 있는 '안내문' >

 

중앙에 있는 주인공 무덤의 전면으로 영상관이 만들어져 있으면서 옆에 있는 스위치를 터치하면 영화가 상영이 되는데, 영화의 내용은 고분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무덤과 순장자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 등 다양한 내용을 연속적으로 방영하고 있다.

 

< 덧널 앞에 있는 '영상실' >

 

무덤 주변으로 전시하고 있는 유물은 대부분 모조품이 되고 원본은 조금 전 조문국박물관에서 관람하면서 보았으므로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돌아보고 고분을 탈출하는데, 밖으로 나오니 언제 비가 왔는가 하면서 화창한 날씨가 한여름의 더위를 뽐내고 있다.

 

< 통로 따라 비치하고 있는 '전시물' >

 

< 출토되어진 '큰칼' >

 

< 출토되어진 '귀걸이' >

 

< '대리리 2호 고분' 에서 출토되어진 유물 수량 >

 

고분군락지를 한바퀴 돌면서 천천히 걸어 원점이 되는 주차장 방향으로 올라가면 사적지 오른편 능선에는 '조문정(召文亭)' 이라는 2층의 정자가 자리하고 있는데, 장자 외부에는 사찰의 건물과 같이 아름답게 단청으로 칠하여져 있다.

 

< 방문자 센터와 함께 하는 '조문정' >

                                                                                                             

이곳 정자의 뒤편으로 방문자 센터 및 화장실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편으로 삼우당 '문익점(文益漸)' 선생님이 고려 말 공민왕 때 중국으로 부터 목화 씨앗을 가지고 와서 이곳 의성지역에서 목화를 재배하였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와석(瓦石)과 함께 기념비가 서 있다.

 

< 방문자 센터 앞에 있는 '기마병' 조각 >

 

< 조각 옆에 있는 '조문국 시비' >

 

< 방문자 센터 뒤편에 있는 '문익점' 기념비 >

 

마침 방문자 센터에 상주하고 있는 해설사 한분과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지는데, 나는 문익점 선생님이 원(元)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붓 대롱 속에 목화 씨앗 3개를 넣고 와서 그의 장인이 되는 정천익(鄭天益) 선생님의 고향 경남 산청군에서 재배를 성공시켰고 산청군에 있는 문익점 기념관을 돌아본 경험을 이야기를 하여 본다.

해설사는 문익점 손자가 되는 '문승로(文承魯)' 선생님이 조선 태종 때 의성군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목화 보급을 확대 시켰는데. 그렇게 한 이유는 중국에서 목화를 많이 재배하는 지역과 의성군의 기후 조건이 너무나 비슷하여 재배를 크게 성공하였다는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의성군에서 문익점 기념비를 세웠다고 하면서 유래를 설명하는데, 내용을 상세하게 이해하지 않고 기념비를 대충 돌아보고 간다면 이곳에는 문익점과 전연 관계가 없지만 역사의 잘못 이해가 발생하여 오해가 일어나게 되므로 기념비를 문익점에서 손자 문승로 선생님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나의 생각을 피력하여 본다.

 

< '목화' 재배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와석 >

 

이 밖에도 조문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데, 국도를 중심으로 전면에 많은 고분이 자리하고 있는 대리리(大里里)와 국도의 뒤편으로 탑리리 및 학미리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국도가 고분 군락지를 2원화 시키므로 매우 유감 스럽다고 한다.

 

< 국도로 2원화 시키고 있는 '고분군' 사적지 >

 

< 현재 공사를 하고 있는 '육교' >

 

그래서 현재 이곳 대리리에서 탑리리와 학미리로 넘어가기 위한 육교를 추진하고 있는데, 육교 건설에 따른 많은 어려움과 더불어 탐방로를 개설하고 있어 완공이 되면 더 많은 고분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할 것이라고 첨언(添言)하여 준다. - 3부 끝 -